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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밥그릇 - 정호승님의 시를 감상하며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잇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정호승님의 밥그릇 전문)

 

 

올해부터는 밤 숲 가시덤불에 떨어진 밤도 주워 담았지요.

토종이라 알맹이가 작아 예전에는 줍지 않았던 밤도 주워서 담았지요.

밤은 오래두면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삶은 밤을 숟가락으로 속을 파내어 말리기도 했지요

어제부터는 삶아서 말린 밤 껍질을 톡톡 방망이로 두드려서 알맹이만 취하는 일을 한답니다.

밤을 나누어 주는 재미가 솔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름 한 번 주지 않았는데도 더구나 내 소유도 아닌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이

마치 대자연의 무한한 선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성경의 <만나>처럼 여겨졌어요.

아무런 조건도 없이 한량없이 베푸는 그 축복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랍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수확한 고구마를 보일러실에 두었었는데

올해부터는 박스에 담아서 방 한 켠에 두었지요.

방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싫어하던 내가, 환갑이 되도록

그렇게만 생각하던 내가 일으킨 작은 변화인 셈이지요.

들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며 낟알까지 수확하는 촌로와 어느새 닮아 있답니다.

나도 인생의 밥그릇 그 밑바닥의 맛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 같답니다.

따지고 보면 밤 몇 알, 고구마 몇 개가 돈으로 환산하면 몇 푼이나 되겠어요?

그러나 그 밤에 담긴 대자연의 축복이며 고구마 밭을 일구던 땀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에

그건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물은 항상 가장 밑바닥으로 스며들고 흐릅니다.

스스로 낮아지며 새와 풀의 목을 축이며 대지의 젖이 됩니다.

고귀한 사랑은 물처럼 상대방에게 헌신하며 모든 것을 내어 줍니다.

 

개가 핥는 밥그릇의 바닥은 삶의 진실을 투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참된 맛과 멋은 그 바닥을 흐르는 진실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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