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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겨울나무

 

 

灼熱하던 태양이 잠시 천궁으로 기울면

내내 나무 그늘에 눌렸거나 바위틈에 갇혀 있던 냉기들이

우루루 몰려 다니며 산은 겨울채비로 접어든다.

 

 

나무들은 볕이 머무는 산골짜기 양지로 내려가

溫氣를 장작더미처럼온 몸에 쌓아 두고 싶어한다.

 

 


잎 둥근 큰키나무들은 섬세한 더듬이로


겨울 기운을 감지하여 변신을 한다.


혹독한 겨울을 연명하기 위해


묵은 가지는 삭정이가 되고


가지 끝에 걸친 옷을 훌훌 벗는다.


한여름 함지박 만한 손을 펴들고


볕부스러기까지 쓸어담던


억센 손들이 오그라들고 야위어 간다.


                    


스스로 자양분 이동 통로를 막고 부황든 잎은


모체를 살리기 위해


어느새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나뒹군다.


자신의 몸이 썩어 거름이 되어


새 생명으로 귀의한다는 믿음을 가진


낙엽들이 거룩한 五體投地를 하고 있다.


 


 


나무들은 냉담해진 하늘 아래 벌거벗고 서 있다.


차가운 별빛 흐르는 밤에도, 비바람 뿌리는 스산한 낮에도


산등성이 나무는 내려 갈 따뜻한 집이 없어 서럽다.


 


 


푸른 잎사귀를 갉아 먹으며 그 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작은 벌레들도 뿌리 틈으로 둥지를 옮겼는데.....


눈, 바람에 가지 부러지고 껍질 벗겨지고


줄기에 생채기 돋는 나무는 꿋꿋하다.


치열했던 지난 시절, 움트고 자라고 열매 맺느라


거칠어진 숨결을 고르며 이윽고 겨울잠에 육신을 눕힌다.


새 봄, 가지마다 솟아오를 생명을 잉태하는 꿈을 꾸며


쇠잔한 원기를 회복한다.


 


 


올 겨울에도 산등성이 나무들 정수리에 얼음 박히고


앙상한 가로수 같은 달동네 사람들 어깨뼈 마디에 오한들겠지.


이제 겨울나기를 거듭하며 강해지고 성숙해 간다.


버림으로써 채우고 죽음으로써 살아 남는 신앙인처럼


생존을 위해 싸우는 투사처럼


생명을 꿈꾸며 안식하는 어머니처럼


                                                 


         


                                                                                          


                          2003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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