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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절벽의 그네

문학작품 속의 그네타기라면 단연 춘향전이 연상된다
양반집 도령을 연모하나 신분의 벽에 갇힌 묘령의 아가씨가 그네를 뛰며 담장 너머를 탐하는 본성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메타포인가!

여행 중에 해안 절벽에 설치한 그네 하나를 한참 바라본다
하얗고 긴 양쪽의 쇠기둥 끝에 매단 아름다운 빈 그네가 사유를 자극한다
제작자가 절벽에 설치한 까닭을 가만히 추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 그네가 짜릿한 감각을 유발하는 놀이기구로 제작된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접근하지 못하게 닫힌 문과 묶인 끈은 위험하여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상상력으로 타보라는 권유인 것 같다

좋아 좋아
고소 공포증을 가진 나지만 가상체험을 하는 일이라면 머뭇거릴 일이 아니지
바다쪽을 향해 바닥의 판에 올라서 보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숨을 몇 번 고른 채무릎을 구부렸다 펴며 서서히 추진력을 확보해 보자

나는 뭍과 바다의 중앙축에 매달린 하나의 진자다
절벽에서 부화한 새끼 새의 첫 비행처럼 그네를 타보자
조금씩 진자각을 넓혀보자
힘껏 발을 구르며 운동에너지를 끌어올리다가 마침내 진동폭이 최대일 때 위치 에너지는 가장 높고 운동에너지는 멈추어지고 다시 반대쪽으로 역진하는 물리적 진자운동의 체험인 동시에 상상력 놀이가 아니던가

절벽 너머 바다로 진출했다가다시 육상으로 귀환하는 왕복 운동이다
오금이 저리는 짜릿함과 안도감 사이를 오가는 그네뛰기다

살아가는 일이 죄다 그네타기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그렇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일이 그렇고 낮과 밤 사이를 오가는 일이 그렇고 살고 죽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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