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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묵묵부답의 지혜

요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요란스럽다
월북이냐 아니냐에 촛점을 두고 전현 정부간의 책임 공방과 정치적 공세를 퍼붓는다
이 건에 대해 나는 소이부답이다

오래전의 일 하나가 이 건과 관련해 소환된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에 학생들을 대동하고 경주 석굴암에 소풍을 갔던 일이다
학교가 석굴암 뒷쪽에 있어 정문으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지 않았다
그 때 직원 하나가 스님께 일러바쳤는데 스님이 먼 산을 바라보며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던 일이다
오래 전의 일이라 당시의 구체적 정황들이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스님의 묵묵부답으로 난처한 상황을 모면했고 그 스님의 행동에서 깊은 가르침을 얻게 된다

라는 프레임으로 사건을 문제화하면 제법 심각한 책임 추궁을 받을 수도 있다
스님은 뒷 쪽에서 산을 넘어온 인근 학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정식으로 입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한 것이다

현상학에서 중시하는 개념으로 후설이 처음으로 사용한 가 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일상적, 자연적 믿음을 중지하고 일시적 잠정적 회의를 하라는 것이다

그 노스님이 묵묵부답한 까닭을 타자인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나는 해석할 따름이다
스님의 방관인지 무관심인지 관용인지 알 수가 없다
스님은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난처한 상황에 빠진 우리를 구원해 주었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큰 지혜를 지닌 스님으로 남아있다

민주주의는 설득과 타협, 토론과 논쟁의 말의 정치다
그런 말도 때로는 괄호 안에 넣어두면 어떨까?
진영으로 대결하며 대결과 갈등으로 치닫는 험한 말보다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절제된 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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