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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1)

한양도성을 따라 며칠을 걷는다
누구와 어디로 걸으며 풍광이 어떻고....하는 사실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다 한 가지 생각에 오래 머문다

600여년 전 조선의 건국과 관련해 도성을 축조한 당시의 시점으로 돌아가 보는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오래된 유적지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화석화된 역사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여기는 것이다
고려의 호족으로부터 텃세와 무시를 당하는 이성계 장군의 입장이 돠어 보기도 하고
땅의 관상을 보러 한양의 여러 봉우리를 걷는 무학대사를 따라 걷기도 하고 새 왕조의개혁 투사인 정도전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한양으로 새 왕조를 옮긴 후 희망과 꿈에 부풀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왕궁을 짓고 도성을 쌓아가는 모습을 조감하기도 한다 성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신하를 지명하고 조직을 구성하고 세부 계획을 논의하고 백성들이 직접 쌓아가는 현장의 광경을 상상하기도 한다
몇가지 자료를 훑어보기도 하지만 내 소박하지만 주체적인 생각으로 한양도성을 바라보기로 한다

새 왕조를 세운 태조와 왕실의 입장이 되어본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표현처럼 역성혁명을 성공한 태조가 새 도읍에서 왕조의 새 살림을 시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경은 나라를.잃은 바운과 망조의 기운을 청산하고 천년 사직의 초석을 정초하고 싶었을 것이다
전 왕조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지방 호족들의 반발과 비협조 관행에서 탈피하거나  제압하고 신진 개혁세력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새 도읍을 원했을 것이다
일부 귀족들의 세상으로 인한 전 왕조의 안일과 무능, 외적의 침략으로 인한 쇠퇴를 보면서 천지개혁을 이루었던  태조의 대장부의 기개와 천도에 대한 고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천도란 것이 왕조의 흥망과 직결된 대사라 태조의 의도대로 이루어지기에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음을 사료로 확인한다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풍수지리설은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자연적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기본 전제 하에 성립된 실천적 생활 철학이자 유사종교적인 믿음의 체계인 것이다
하물며 한 개인이나 집안의 음택과 양택을 잡는 일도 자연에 대한 외경을 밑버탕에 두고 유명한 풍수가를 초빙하여 명당을 취하였거늘 한 욍조의 백년개계의 기틀이 될 도읍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막중한 대사일 것이다 왕사로 추대된 무학대사가 한양의 산과 하천과 분지를 살피며 새 도읍지로서의 적정성을 살피며 새 왕조의 터를 잡았으며 오늘날의 수도로써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계룡산, 무악 등의 후보지가 거론되고 수많은 갑론을박을 거쳐 최종적인 결정은 왕사의 보필로 왕의 최종적인 결단에 의한 것이리라

한양이 새 도읍지로 타당한 근거로 제시한 인문지리적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 복합적 요인을 단순화하여 생각해 볼 때 가장 우선적 조건은 지리적으로 중심부에 자리잡는 것이다 동서남북의 중심부에 위치해야  지역 편중으로 인한 소외되는 지역이 최소화되며 만인의 공감을 얻을 것이 자명한 이치다
그리고 자연지리적 요인을 감안하는 것이 풍수를 다루는 기본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풍수의 어원인 장풍득수는 바람을 가두고 물을 취하기 좋은 땅을 고르는 것이 풍수지리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혈이라 하여 땅의 기운이 모인 지점이 있고 그곳에 열매가 맺힌다 하여 혈 앞에 있은 평지가 명당이라며 인생에 복과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크고 높은 산은 아니자만 인왕산 정상에서 고궁과 청와대를 내려다 보며 도선국사나 무학대사 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풍수사상을 선조들의 마음으로 공감하는 기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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