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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高士觀松을 감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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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현 박종회 선생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저와 같은 문외한들도 寫意畵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선비가 바위 옆에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는 지극히 단순한 장면입니다.

 

 

                         ‘높은 선비가 소나무를 바라보다.’(화제)

 

 

   文人畵를 寫意畵라고 하는 이유를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오래 바라보며 깊은 사유의 우물에 두레박을 내립니다. 

 

 

   소나무 등걸을 보아도 이 나무는 백년도 더 된 고목입니다.

많은 줄기와 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에서 피어난 솔잎들만을 그렸습니다.

사실과 채색을 중시하는 수채화나 유화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지 흥미롭군요.

 

 

  저 古松을 보세요. 아마 좋은 땅에서 자란 것 같지가 않군요.

저렇게 허리가 휘어지도록 자라면서도 오랜 세월을 버틴 것만 보아도

숱한 아픔과 시련의 땅에서 자란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 등걸을 보면................

  나무의 허리가 휘어짐은 현실적인 고통과 불의에 저항한 삶의 흔적의 상징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푸르럼을 잃지 않기 때문에 문인화에서 소나무가 자주 그려진 것 같군요. 

 

 

  그런 나무를 응시하는 저 선비는 누구일까요?

 지팡이를  쥔 허리가 꼿꼿한 모습만 보아도  학식을 겸하고 연륜을 갖춘 당당한 선비입니다.

 부정과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선비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적당하게 타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찌보면 바보처럼 살아가는 샌님일 수도 있습니다.

 

 

  소나무 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습니다.

어쩌면 어린 소나무의 성장을 지켜보았을 수도 있을 만큼

온갖 풍상과 인고의 세월을 꿋꿋이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바위 옆에 왜 선비가 서 있는 것인가요?

 

 

  선비는 푸른 옷을 입고 있군요. 바위도....소나무 잎도......

선비는 소나무와 바위를 바라보는 것이라기보다 지향한다고 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림에서 선비는 소나무와 바위에 자신을 동화 시킵니다.

 주인공은  그래서 더욱 꿋꿋하고 당당합니다.

 인간 승리입니다.

 

위선환 시인의 표현을 빌면

바위가 뻗쳐서 소나무가 되고

그 가지가 뻗쳐서 선비가 된 것인지......

 

 

 

창현선생의 그림을 보면 선비가 자주 등장합니다.

요샛말로 그의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만큼요........

오류 선생(버드나무 아래 도포를 입은 선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소나무와 바위의 변하지 않는 존재적 특성을 화가는 이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소나무 잎의 상록성(푸르럼)과 바위의 고착성을 은연중에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문인화의 절제와 축약 그리고 함축의 미학이 담긴 격조 높은 그림입니다.

  참 멋있습니다.

  이 그림의 중후한 가치와 품격이 더욱 그 멋을 돋보이게 합니다.

 

 

 

    이 그림의 빈 공간에는 화가의 가치관과 사상과 철학이 그 여백에서 꿈틀거립니다. 여백의 미, 여백에 감춘 신비라고나 할까요?

    저 선비는 창현 선생 자신이기도 하고 그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는 인격 수양은 유가의 공맹사상에서,

그리고 예술은 도가적인 세계에서 소요하고 싶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화가가 여성 제자들을 여자 선비 즉 女士라고 호칭하던 이유가

 

그림을 통해 선비 정신에 다가가라는 독려였다고

어느 분이 귀뜸해주더군요)

 

 

 

 

 

  지금 이 그림을 보면 평소에 화가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드러납니다.

  선비는 지금 소나무와 바위를 바라보며

 

 선비사상-

자신의 의리와 지조에 대한 강열한 신념을 확인합니다.

  저 선비의 곧추세운 허리를 보세요.

소나무와 바위의 선을 가만히 바라보면 곧은 선입니다.

소나무의 굽은 허리도 곧은 선 하나하나가 뻗쳐 있습니다.

곧은 선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붓을 놓고 목필을 쥐었다고 하더군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런 그림을 보면서 멋을 느끼고 기쁨을 체험하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 미학과 가치에 대한 바른 이해와 통찰로 이어지면 더욱 좋겠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내 마음에 사유의 공간이 깊어지면 금상첨화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