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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겨울 손님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사철가 한 귀절처럼 나목한천 찬바람에 백설이 펄펄 내릴 때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겨울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인 입동을 지난지 보름이 넘고 소설을 한 주 전에 지났는데 정작 겨울 손님은 느긋이 어디서 머무르고 있는지...... 이런 시류의 흐름도 모르고 철도 모르고 천진스레 꽃망울을 터뜨린 생강나무 노란꽃이 촉촉히 젖는다 더보기
톱날을 쓸며 톱날을 연마한다 이 조그만 톱은 전원생활에서 요긴하게 쓸모가 많지만 효율성이 큰 전기톱이나 엔진톱에 밀려난 뒷방 신세다 「네 비록 왜소하고 미력하지만 틈새시장에서 꿋꿋이 버티니 장하기도 하구나」 째그락 째그락 줄이 톱날을 쓸고 세우는 소리는 쇠붙이끼리 마찰하는 불유쾌한 소음이다 강성의 줄이 연성의 톱을 제압하며 쇳가루가 떨어지고 무딘 톱날이 하얗게 반짝거리며 예리해진다 자세히 보면 줄에도 사선으로 미세한 홈이 있어 쇠를 쓸어낸다 홈은 비어있는 공간이다 강한 쇠와 빈 공간이 물체를 자를 수 있다 톱날의 예리한 꼭지점은 빈 공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의 톱날은 위가 뾰죽한 삼각형이고 양 옆이 한 방향으로 날을 세우고 바로 옆의 톱날은 방향이 역으로 날이 서 있다 한 눈을 지긋이 감고 톱날의 양끝을 보면 V.. 더보기
망치질 사이 오늘도 온종일 나무 작업을 한다 뿌리가 산발한 채 흙과 돌을에 품은 저 큰 덩어리 앞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가리올 영감은 놀이에 빠진 아이처럼 열심이다 이보오! 그게 뭐라고 그리도 열중이다오? 온종일 해봤자 그게 그것인데 막막하고 지루하지도 않으시나요? 대체 언제나 완성하려는 것이오? 하하 지루하고 힘들면 이게 뭐 대수라고 이러겠소 나는 완성이라는 목표보다는 이 과정을 여러 단계로 분할하고 높은 기준을 두지도 않지요 내가 생업으로 하는 프로들의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풋풋한 개성이랄까 서투른 신선함을 풍기고 싶답니다 빨리 이 단계를 완료하고 다음 단계로 가야한다는 압박감이 없기에 시행착오에도 실망하지 않고 작은 성과에도 스스로를 칭찬하며 만족하지요 내 좋아서 하는 일이라 무슨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오 그.. 더보기
수석 한 때는 탐석하는 수석가들을 편향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했었다 돌에다 값을 매가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천을 누비는 이들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었다 자연상태에서 일체의 인공을 가하지 않는 것은 창작이 아닌 수집일 뿐이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던 내가 생각이 바뀌었다 탐석을 하며 하천을 몇 번 다녀보니까 묘한 기대감과 집중감으로 유쾌한 활동이었다 어쩌다가 마음에 드는 돌을 만나면 짜릿한 흥분과 만족감이 있었다 명석을 구하겠다는 욕심없이 산책을 겸한 탐석에 독특한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경험해 보지 않고 내린 성급한 판단을 경솔함으로 자책했다 청석 하나를 수반 위에 올려본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주은 돌이다 매끈하고 안정감 있는 구도다 물개 형상이기도 하고 섬 형상으로도 보이기도 한다 오가며 물개에게 칙칙 스.. 더보기
느티나무 뿌리를 손질하며 3년을 묵힌 느티나무 뿌리를 손질한다 박힌 돌을 캐내고 품은 흙을 떼내고 잔뿌리를 잘라낸다 시작할 때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차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듬어져간다 특별한 연장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긴 드리이버와 손톱, 곡괭이와 망치 뿐이다 이런 작업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끈기와 작업과정을 즐기는 유희가 중요한 것이다 하루 종일 후비고 자르고 파내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 놀이가 되면 재미가 생겨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박힌 돌멩이 하나가 빠질 때에도 희열감이 따른다 연장과 완력과 기술이 빚어내는 작업의 작은 성과와 성취감을 맛본다 시간은 많고 어떻게 만들어도 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주체적 놀이라 더욱 즐겁다 나무 뿌리 공예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작업능률을 높이는 공구를.. 더보기
불쏘시개를 구하다 불쏘시개를 구하러 뒷산에 간다 소소하고 소박한 일에서 작은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것은 자연인의 무욕의 소산이다 죽어서 떨어진 나뭇잎과 가지들을 긁어 모으는 손길이 부지런해지고 뇌리에 스쳐가는 의미들로 무료한 일상이 생기를 찾는다 바싹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도 이 산골에서는 음악이 된다 난로에서 마지막 형상을 불 태우며 재가 되어 소멸해 가며 대자연은 순환한다 자연의 부산물이 쓰레기가 아니라 썩고 거름이 된다 움이 돋고 잎이 나오고 뿌리를 내리고 낙엽이 지는 일들이 유기적 생명의 순환 과정이다 참나무 잎들과 솔잎들이 뒤엉켜 양탄자처럼 푹신하다 잎을 죄다 떨군 참나무들이 빈 가지에도 의연하게 찬바람을 맞으며 새 봄을 기다린다 더보기
잡담과 호기심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시간은 잠깐이다 곧 이어지는 잡담의 시간은 지루하고 식상하여 견디기 힘이 들 때가 잦다 그렇다고 하여 내색을 할 수도 없으니 딱할 노릇이다 잡담은 어떤 사물이나 사태의 본질이나 핵심에서 벗어난 지엽말단이고 주변의 변죽을 울리는 말이다 잡담은 얕고 지속성 없이 부유하는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이야기다 항간에 오가는 자질부레한 이야기들이다 타인이나 사태에 대한 애정어린 깊은 이해와 책임이 아니라 속된 이야기들이다 잡담을 생산하는 동력은 호기심이다 세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람판이다 현대판 바람은 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이 아니라 전파를 타고 천리마처럼 달린다 발 없는 바람이 온갖 소문들을 몰고 다닌다 그런 바람결에 편승해야 변방으로 밀려나지 않고 주류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학.. 더보기
현성산 문바위 옛 고향 마을인 농산리에서 용문평 너머의 현성산 봉우리 뒷편,어릴 적 늘 바라보던 먼 앞산 너머는 호기심과 동경의 땅이었다 직접 가보지 못하고 듣고 상상하던 땅 지제미! 반세기가 지나 그 향수를 달래려 몇 차례 발걸음을 돌린다 예전에는 여닐곱 가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두어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지제미 가는 길목에 있는 거대한 바위 하나, 문바위다 마을을 지키는 문지기이자 수호자로 여기는 것이리라 보통 거대한 바위를 집채만 하다고 하는데 문바위는 아파트 한 동쯤 되는 거대한 풍채를 과시한다 바위 앞에서 나는 더욱 왜소해진다 바위의 틈새에는 촛농 흐른 자리에 간절한 소망과 기구한 사연들이 배어있다 이 거대한 바위의 신령스러움에 의탁해 보려는 소박한 민초들의 소망을 공감한다 바위에는 이곳에서 살며 동고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