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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남파랑길 산책 소노캄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거제도 지세포항 근처 남파랑길을 걷는다 바다에 발목을 담근 튼튼한 다리로 떠받친 구조물 위로 난 길은 평탄하고 아름답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옥빛 바다는 평온하고 고요하며 아침 햇빛을 반사한다 요동치는 바다를 평온하게 만든 것은 겹겹이 둘러싼 자연 방파제다 투정 부리는 아기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달콤한 수면으로 이끄는 어미처럼 정겨운 풍경이다 모처럼이지만 내 곁에는 함께 걷는 친구가 넷이나 있다 옛 친구들과의 동행이라 즐거운 대화가 오간다 저기 좀 봐! 저게 섬이야 뭍이야? 거제섬이 마치 불가사리처럼 생긴 것 같지?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저 고기 이름이 뭐야? 나이가 들수록 많이 걸어야 한다는 말에 모두들 공감을 한다 아름다운 풍경이며 옛 추억들을 회상하는 .. 더보기
조명과 풍경 자연상태라면 어둠에 잠겨 있을 풍경을 잠 못 들게 하는것은 문명의 집요한 추적이다 암흑은 빛을 흡수하는 포용력이 강한 바탕이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빛마저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어둠이 바탕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둠은 여신이고 음의 기운이다 오색 조명이 무심한 풍경을 깨워 밝은 빛으로 노출시킨다 빛의 성질을 학습한 조명기기들이 현란하게 요술을 부린다 마침내 어둠의 풍경이 무대 위로 올려지며 사람들에게 볼만한 굿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잠을 미루고 이 별천지를 즐긴다 높다란 성곽 위의 정자 하나가 금방 착지한 작은새처럼 날렵하다 아직 날개깃을 접지 않은 채로 푸득거린다 기술문명이 만들고 훈련시킨 빛의 요정들의 변신은 경이와 찬탄을 자아낸다 여러 색의 조명이 지상의 여러 지점에서 피사체의 일부나 전.. 더보기
친구의 고택 마당은 수석 전시장 수석 애호가인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고옥의 뜰에는 온갖 수목들과 화초류가 어우러져 사철꽃이 피고 진다 한옥의 마당은 수석 전시장으로 꾸미고 있다 자연스러운 편안함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더보기
성곽에서 사람들만이 깍지를 끼는 게 아니었구나 돌멩이들이 제 몸뚱아리 한 쪽을 꼬부려 마주 한 쪽에 맞물리며 오래오래 한 몸을 이루자고 그래서 떠돌이 돌멩이의 서러움 당하지 말자고 천년가약을 맺는 저 성곽을 보게나 더보기
나이롱 뽕 화투놀이가 민간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그럴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는 짜릿한 재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넛이나 대엿 사람이 둘러 앉아서 어울려 노는 즐거운 놀이판이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규칙과 개인간의 다양한 차이와는 상관없이 게임에만 몰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재미가 내재된 까닭이다 일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모두 열두 종의 그림딱지와 한 종류마다 두 장의 알맹이와 두 장의 쭉정이가 있어 모두 48개의 딱지로 펼쳐내는 변화무쌍한 승부에 빠지게 된다 화투는 자발적 의지와 우연성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게임이다 누구는 운7기3이라고 하며 그 역으로 말하기도 한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패와 상대가 가진 볼 수 없는 패가 있고 바닥에 감추어진 패가 있는데 감추어진 패.. 더보기
비밀번호 새 예금 통장 하나를 발급 받으러 은행에 간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내려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에 순순히 응한다 창구의 담당 직원은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태블릿 pc에 적으란다 나는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이며 전자펜으로 적어넣는다.이 절차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두 번 반복한다 통장 발급은 예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어서 직원은 태블릿에 내 성명과 서명을 요구하는데 도합하면 열 번이 넘는다 금융실명제가 뿌리내려 누구나 이런 절차가 부당하거나 크게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금융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물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사태를 직시하는 내 입가에는 쓴 웃음이 감돈다 한 시절에는 모든 글자를 숫자로 바꾸거나 그 역의 과정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었다 적군이 해독하지 못하게 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