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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

앵글 선반 조립 외종의 창고 선반을 만드는 일을 돕는다 셋이서 힘을 모아 티격태격하며 두 개의 선반을 조립하고 가재 도구 정리를 도와준다 앵글이라는 철제 재료를 이용한다 앵글이 누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인지, 특허로 인정을 받았었는지 모르지만 상품가치가 탁월하다 무거운 철제를 얇고 가볍게 프레임을 표준화하고 조립만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비자가 큰 어려움 없이 완제품 생산에 직접 참여하여 성취감을 누릴 수 있게 한 점이 인간적이다 선반은 물건이 놓일 수 있는 평면을 만드는 것이고 여러 개의 선반은 평면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공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토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성이 생긴다 도시의 아파트, 책꽂이, 장롱, 선반이 모두 욕망을.. 더보기
고라니와 대면 창선 산책로를 걷다가 도로변에서 아랫쪽 냇가에 있는 고라니 한 마리와 마주한다 너댓 걸음 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높낮이 차이가 있다 눈망울에 가득한 불안과 겁, 잔뜩 경계하면서도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멈춰 선 고라니를 안심 시키려 조심조심하며 사진을 찍는다 실제로는 30초 정도의 짧은 마주침이지만 이 장면을 포착해 둠으로써 그 마주침을 현재화할 수 있다 아가야 너는 고라니로 나는 사람으로 종은 비록 다르지만 우리가 동일한 시공의 조건에서 대면하는구나 무서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를 사냥감으로 여겨 죽일만한 담력도 없는데다 생명에의 외경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단다 더보기
이끼를 덮은 바위 월성천 산책로 한 켠에 잠시 머문다 사각의 바위 위에 핀 이끼가 노란 작은꽃을 피우고 있다 직사면체 바위는 모암에서 분리된 파편이고 산비탈을 하강하는 중이다 아직 계류에 입수하지 못한 상태라 모서리가 날카롭다 나는 무언의 대화를 한다 길손이여 억겁의 시간을 순례하는 길에 들어섰구려 보아하니 아직은 초보로 보이는군요 나는 1시간에 6키로를 걷는데 바위는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바위도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위의 몸체에 비바람이 파고들어 균열이 생기고 우리가 잘 파악하지 못하는 여러 계기들에 의해 부서지고 굴러내릴 것이다 비탈에서 숨을 고르며 바위가 쉬고 있고 이끼가 평평한 면에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바위는 느긋이 이끼를 뎦고 가는 길을 서두르지 않는다 더보기
구석 청소 청소를 하는 중이다※ 계획적, 습관적 청소가 아니라 우발적 행동으로 시작된 것인데 돋보기 안경을 끼고 책을 읽다가 방 바닥에 쌓인 먼지와 티끌을 보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잘 보이지 않았거나 무심히 보았던 것들이 엄청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청소기를 밀고 다니는 평소의 청소와 달리 오늘은 돋보기를 끼고 손걸레로 구석 청소를 한다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먼지와 티끌과 벌레와 거미줄과 같은 것들이 청소기의 강렬한 완력을 피해 기물들 아래나 뒷쪽의 구석진 곳에서 뒤엉켜 한 살림을 차려놓고 있다 놈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숨바꼭질처럼 숨어야 산다 들키면 죽는 기다 우리 세상은 장롱 아래나 냉장고 다리 밑 조그만 빈 틈이지 이 집 주인은 나이가 있어 밝은 눈을 갖지 못한 것과 게.. 더보기
잡초란 인근에 거주하는 분들이 오셔서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다 놀랍게도 한 분은 같은 대학교 출신의 입학 동기에다 교원으로 퇴직한 분이라 반가움이 크다 뜰을 둘러보다가 내가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잡초를 일일이 뽑으려 하지 말고 지피식물을 심으시라고 권유한다 번식력이 좋은 식물이 잡초를 뒤덮어 제초효과를 내는 것이다 내가 심는 지피식물로는 섬백리향, 기린초, 좀씀바귀, 꽃잔디, 사사와 같은 것이다 대지는 보편적 도를 따라 공평하고 자애로운 모성애를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식물을 간택하지 않는다 빈 땅을 먼저 차지하는 쪽에게 내어준다 이런 속성을 이용해서 뜰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활용하는 기술이다 어떤 풀이 잡초일까? 한 마디로 내가 심지 않은 풀이다 고추 밭이나 들깨밭에 바람결에 씨를 뿌린 맹아주, 비단풀 사래 같은.. 더보기
아침의 텃밭에서 아침에는 밭에 나가 관수하는 일이 일상이다 블루베리와 토란 호박 등이 물을 좋아해서 물조리개로 대여섯 번을 준다 클래식 음악이 내 귀로 흘러들어와 이 일상의 행위가 하나의 의례로 격상한다 물을 주는 사람과 물을 받는 작물 사이에 파동이 생기며 상호 공명이 이루어진다 물줄기가 잎 사이로 흐르며 구멍을 낸 비닐 사이로 스미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는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의 미소와 같다 이제 토마토와 오이 가지가 내 노고에 답을 하며 실하게 익은 알찬 선물을 되돌려 준다 주고 받고, 받고 또 주는 행위를 통해 하나의 유기적 결속과 신앙처럼 굳건한 믿음을 확인한다 밭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교감이다 내 손으로 심고, 내 발걸을 듣고 자라 열매를 맺으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 수퍼마켓 식품 냉장.. 더보기
삶의 쉼터에 가입하며 거창읍에 있는 삶의 쉼터에 회원 가입을 한다 불교 조계종에서 장애인과 여성 노인복지를 위해 설립한 종합복지시설인데 인기가 많다 주로 노인과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하루 종일 여기서 머물며 쉬거나 자기계발의 공간으로 매우 유익한 공간이다 게다가 매우 저렴한 비용(2000원)으로 중식이 가능하고 자체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나는 가끔 읍에 가서 용무를 볼 때 이곳 헬스장을 이용하려고 가입을 한 것이다 초급자용이지만 그런대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가 있다 더보기
일 없다 어디선가 들리는 뻐꾸기 소리다 저 익숙하고 친근한 소리와는 달리 야생에서 저 새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문 위의 아치에 올린 줄단풍 꽃망울에 숱하게 많은 벌들이 마치 폭포성처럼 분주하다 방금 다람쥐 한 마리가 댓 걸음 앞에서 앞발을 들고 멈춰서서 어딘가를 주시하더니 쏜살같이 저 길을 간다 한가롭다 일 없다 충만해진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