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의 글방
세월이라는 스승
청곡2
2016. 3. 30. 07:00
아들 죽어 싸늘한 손을
뜨거운 눈물로 녹이던
억장 무너지는 노모의 상처가 남긴 흔적 안에
세월이라는 스승의 손길이 머물러 있네.
때때로 밀려드는 색정에
고해성사로 보속하던 초로의 사제를
거룩하게 지켜 주었네.
세월이라는 스승이 은빛 머리칼 안에 있네.
감방 차디찬 벽에 기대어
비좁은 창문 너머 회한의 하늘을 응시하는
수인의 눈동자에 세월이라는 스승이 잠겨있네.
떫은 땡감이 가을볕 받아 홍시 되듯이
치졸함이 흐르던 말썽꾸러기의 뺨이
연륜의 훈장을 단 중년의 패인 주름골에
세월이라는 스승이 근엄하게 자리잡네.
서슬 시퍼른 예지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예민한 눈과 귀를 적당히 어둡게 하고
민감한 혀를 어눌케 하여
우둔한 사람에게 세상 이치 가르치네.
이 세상을 창조한 분의 계획된 신비
몇 겁을 쌓아온 삶의 편린의 탑
영원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진화의 우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