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의 글방

왕피천에서 2

청곡2 2016. 3. 29. 07:00

 

 

 

긴 장마로 채비를 미루다 열병 앓듯 왕피천에 닿았다.

강은 열병에 신음하며 한창 굿을 하는 중이었다.

강은 이미 동공이 초점을 잃고 손이 전율하더니 시퍼런 칼날이 광란하고

흔들리던 방울은 마구 떨어져 내리고 집어삼킬 기세로 너울거린다.

 

 

한 시절 내가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 가며 인생을 배우고 나이를 먹듯

강도 저렇게 나이를 먹으며 의례처럼 병을 치르는가?

풍광 좋은 봄날 돌 틈 사이로 거품을 내는 사랑의 연가나

장엄한 침묵으로 깊어진 호수의 성찰의 기도나

여울목에서 빠르고 기세에 넘친 뜀박질을 하다가 푸른 소에서는 한가로운 휴식을 한다.

강은 그렇게 숨쉬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저 강은 격정의 몸살을 앓는 중이다.

청정한 평화와 왕성한 원기는 열병 후에 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