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의 글방

지게에 걸머진 한숨과 낭만 그리고 부끄러움

청곡2 2016. 3. 13. 07:00

 

지게는 개인용 운반 수단이다.

팔을 뒤로 내밀어 사람을 등에 업는 것처럼 등에 밀착하여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게

고안한 집단 지혜의 산물이다.

외국인들이 A 프레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지게는 앞에서 보면 A자 형이다.

자 형의 소나무 두 개를 결합하고 어깨에 걸머지게 짚으로 등받이와 멜빵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게는 농경민들의 운명처럼 어깨를 짓누른 멍에였다.

좁은 토지에 의지하여 연명해야 했던 소작농이나 자작농들은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에 휘청 거려야 했다.

거칠어진 숨을 헐떡거리며 한 발 한 발을 작대기로 짚어가며 나아갈 때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가 지게에 배어 있다.

 

 

지게 쉼터라는 게 있었다.

      지게를 지는 동안 앞으로 숙여야 했던 허리를 펴며 한숨을 내뱉는 쉼터.

지게 짐을 작대기로 고아 놓고 잠시 숨을 고르며 원기를 회복하는 중에도

삶에 대한 희망과 낭만을 잃지 않았으니 놀랍고 눈물겹다.

나뭇꾼 아이들이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방아타령 산타령에

농부가, 목동가로 장난을 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이 방아, 저 방아 다 버리고 칠야삼경(漆夜三經) 깊은 밤에 우리 님은 가죽방아만 찧는다.>

며 희희락락하거나

 

 

<갈퀴 메고 낫 갈아 가지고서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얼럴.

쌓인 낙엽 부러진 장목(長木) 긁고 주워 엄뚱여 지고

석양산로(夕陽山路) 내려올 제,

손님 보고 절을 하니 품안에 있는 산과(山果) 땍때굴 다 떨어진다. 얼럴>

 

 

 

 

넓은 길이 있으면 지게는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

손수레나 우마차가 몇배나 더 효과적인 수단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넓히려는 적극적인 사고보다는 기존의 길에 적합한 수단에 의존했다.

현실을 타개하기 보다는 현실에 나를 맞추어 나가는 농경민의 소극성과 폐쇄성이 드러난다.

 

 

그래서 지게에는 운명에 순응하기만 하고 타성의 속박을 깨지 못하는 안일함이 엿보인다.

길이 좁으면 넓히고 없으면 새로 만드는 창조와 혁신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농경민들의 박약한 현실 개척 정신의 하나의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2천 년 전의 아득한 옛날, 진시황은 천하의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길을 닦았다.

식량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도로를 닦고 마차의 크기를 통일 시켰다.

심지어 운하까지 만들어 물길을 이용하여 국가를 번창하게 만들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처럼 2천 년 전에 로마인들은 돌로 만든 포장 도로를 만들었다.

점령지를 확보하면 먼저 도로부터 만들어 통치하고 교류하여 로마 문명을 세계로 전파하였다.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던 우월한 나라와 민족들의 문명사를 생각해 보면

불과 반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지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농촌의 현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지게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착잡하다.

지게 위의 고역의 한숨과 가난의 슬픔과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일함이 뒤엉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