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도자기 한 점 - 연당에 걸터앉은 보살

청곡2 2016. 8. 26. 07:00

 

자한 선생의 작품 한 점을 감상한다.

<연당에 걸터앉은 보살>

내가 그렇게 이름 지어본다.

 

 

 

둥근 연당 안쪽에 연꽃을 꽂을 수 있게 구멍이 나 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 독창적인 작품이라

내가 이리 저리 돌려 보며 한참을 감상하는데

 

이 양반 하는 말 좀 보소

그거 가져 가세요.”

속 터지는 소릴 한다.

 

 

 

 

나야 좋은 일이지만 가난한 도예가의 실없는 짓이 아닌가!

호의가 넘쳐서 이제 자신의 실험작까지 내줘 버린다.

어떻게 이리 소중한 작품을 선뜻 내놓느냐며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쳐도 소용없다.

마음이 닿는 사람이 가져야 보람이 있지요.”라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그러겠노라고 두고두고 감상하겠노라고 한다.

 

 

가마에 연기가 오른 지 몇 해가 되었을까?

지금은 멀리 있는 지인의 가마에 더부살이로 가끔 굽는 것이 안스럽다.

그런데 이 양반이 원체 독특한 기질을 가진 도예가라 자기가 만든 작품을

누구나 다 만드는 겁니다.”스스로 가치를 절하하기 일쑤다.

내 속이 터지는데 가족들이야 오죽하랴 싶다.

 

 

글쎄 한 번은 어느 일식집에 옻칠을 술잔을 수백 개를 납품을 하기로

어느 정도 약속이 되었는데 손님들이 한 개 두 개 호주머니에 넣어 가면 못 당할 것이라며

오히려 주인 걱정을 해서 취소가 되기도 했다.

어이가 없어서 나 원 참!

 

 

 

 

 

시골에 푹 파묻혀서 오로지 외동딸 하나를 위해 정성을 쏟으며 가난하게 사는 기인이다.

털보에 우람한 체격이 장비 같이 생겼지만 찻잔 안에 개구리를 한 마리가 앉은 걸 보면 섬세함에 놀란다.

도자기에 옻칠을 접목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하는데 딱 한 가지 기술이 부족하다.

<도자기가 돈으로 변하는 기술>

 

 

젊은 시절부터 유명한 스승께 도제식으로 도자기를 배우고 익혀

일반적인 도예인들이 넘기 어려운 벽을 훌쩍 뛰어넘고도 

무명 도예가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형형한 정신, 탁월한 안목과 인문적 정신을 나는 잘 안다. 

딱하기도 해서 나만 혀를 찬다.

<나 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