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삼베의 추억 (1) - 삼잎치기 소리

청곡2 2016. 9. 11. 07:00

 

사래 질고 광 넓은 밭에 삼잎 치는 저 처녀야

삼 잎은 제쳐놓고 내 품 안에 잠 들거라.

잠들기는 애럽잖으나 삼잎치기가 더 애럽소

 

처재 이름은 그 머심이뇨 내 이름은 동구각시

총각이름은 그 머심이뇨. 내 이름은 강태분이

 

처제 집은 그 어디미뇨. 저 건네라 저 솔밭 밑에

아럿 채도 서른 두 칸 웃 채도 서른 두 칸

열두 대문 달린 집이 열고 닫기가 자미나요

 

총각 집은 그 어데미뇨. 거 건네라 대밭 밑에

아럿 채도 서른 두 칸 웃 채도 서른 두 칸

열두 대문 달린 집이 열고 닫기가 자미나요.

 

은가락지를 너를 주랴 은봉차를 너를 주랴

은가락지도 나도 있소 은봉차를 나를 주오

 

 

 

 

 

반 세기전의 추억을 회상한다.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흑백 영상을 퍼올리기 위해

마음의 우물 속을 헤집으며 추억의 두레박을 내린다.

 

삼밭에서 잎을 치는 노동요를 옮겨 적는 것은

그 땀 내음에 배인 수고로움과 정서를 보다 친밀하게 느껴보고 싶은 까닭이다.

 

 

 

 

 

 

요즘이야 삼이 대마초의 재료라 강력히 금지되는 작물이지만

예전에는 삼베를 짜는 재료라 짭짤한 소득원이 되었다.

그러나 삽을 심고 가꾸어 삼베가 나오기 까지는

수많은 손길과정성을 요하는 공정을 거쳐야 했다.

 

 

삼베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삼베일소리라고 하는데

삼밭매기 소리, 삼잎치기 소리, 삼겆 소리, 삼삼기 소리,

물레 소리, 베나르기 소리, 베매기 소리, 베짜기 소리 등이

전승된다.

 

 

삼이 다 자라면 어른의 키보다 훨씬 길다.

그런 삼을 음력 유월 하순부터 삼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삼잎을 쳐야 했다.

삼겆에 찌기 전에 삼밭에 있는 삼을 남자들이 긴 대나무 칼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쳐 올린다.

그러면 여인들은 쪄 놓은 삼대를 잡고 위에서 아래로 쳐 내리면서 삼잎을 치는 것이다.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남녀 간의 에로스를 자극하는 노랫가락이 흘러 나온다.

만인에게 공통된 화두가 에로스다.

두 사랑하는 개체가 만나서 매혹되는 사랑의 이야기처럼 진솔하고 절실한 것이 있으랴!

처녀를 희롱하는 것은 오늘날의 성희롱이 아니라 낭만을 갈구하는 노래라 된다.

품에 안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삼잎치기가 더 어렵다는 하소연으로 일의 피로를 푼다.

 

오죽이나 가난했으면 대궐 같은 집을 저리도 소망했을까?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그런 집에서 정분을 맺으며 살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