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환 님의 <우중> 시 감상
우중(雨中)
위선환
비 줄줄 내리고
나는 어깨를 기울여서 키 낮은 동행에게 가려주고, 동행의 반쪽이 비에서 가려지고
비 가려주려 기울인 어깨와 아래쪽은 비 젖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나의 기운 어깨와 아래로 반쪽은 비 젖지 않고
비 가려진 동행의 반쪽과 비 젖지 않는 나의 반쪽이 다붙어서 비 내려도 비 젖지 않는 한쪽이 되고
나와 동행의
합해서 한쪽이 못 된 반쪽씩은 서로 떨어져 있으므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 먼 반쪽씩이 각각 비 젖고 있으므로
나는 팔을 둘러 척척하게 젖은 동행의 저어쪽 어깨를, 동행은 팔을 둘러 빗물 흘러서 도랑 파이는 내 이쪽 옆구리를 서로 싸안고
걸어가는 중이고, 비 줄줄 내리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한 쌍이 걸어간다.
우산은 둘 다를 빗물로부터 가려줄 만큼 크지 않으므로 둘은 어깨를 바싹 붙여 걸어가는데
문제는 맞대지 못한, 맞댈 수 없는 반대편 어깨가 비에 젖는다는 것이다.
비를 맞지 않으려면 서로 동그랗게 몸을 말아 포옹을 하면 좋으련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 것이 삶이 아니던가.
연인들은 한 몸이 되려한다. 손깍지를 끼거나 팔짱을 끼거나, 포옹을 하는 일들이
두 개체가 하나가 되려는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고 또 다른 하나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에로티즘의 본질인 것이다.
사랑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내고 그 반쪽과 완전한 일치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시인은 예리한 눈과 감성으로 빗속을 걸어가는 연인의 젖는 쪽과 젖지 않는 쪽을 대비 시키고 있다.
한쪽의 오른쪽 어깨와 상대의 왼쪽 어깨는 젖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우산의 덕택이다.
여기서 우산은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것이나 공적으로 용인된 것들로 결혼을 꼽을 수 있다.
결혼이 공인을 받아 공동체를 구성하여 사랑을 하고 자녀를 출산한다.
그러나 결혼만이 연인의 동행은 아니다. 결혼은 동행의 한 형태일 뿐이다.
우산으로 가릴 수 없는 비에 젖는 가장자리의 어깨가 더욱 가련하고 결리는 것이다.
세상엔 결혼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무수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