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단상
고양이가 서로 짝이 되고 그 사이에서 새끼 몇 마리가 탄생하며
내 삶터에 의지하며 살아온 지 몇 해가 되었다.
집안에는 들여놓지 않으며 오로지 먹이만을 제공하는 까닭은
고양이의 본래적인 천성을 인간적인 기호의 틀에 맞추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반야생인 셈인데 처음에는 내 존재 자체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혼비백산하여 데크 밑으로 피신하기 일쑤인 녀석들이
요즘엔 차츰 경계를 풀고 그저 서너 발 물러서기만 한다.
고양이는 영역 다툼이 매우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까만 숫컷 고양이가 내 집이란 제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꼬리가 잘릴 지경있으니까.
그런 영역을 제 짝인 암컷 고양이에게 내 주고 요즘은 며칠에 한 번씩만 방문을 한다.
반야생으로 10년을 살았으니까 내가 제공한 먹이가 고양이의 수명을 몇 년 연장한 것이 분명하다.
부계는 까만 털에 흰 얼룩이 있고 모계는 잿빛 털인데 새끼들은 부계와 모계의 유전자를 받은 것이 흥미롭다.
암컷이 낳은 새끼가 네 마리였는데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게 도태된 모양이다.
자연상태에서 도태되어도 힘들어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녀석들에게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험악하고 치열한 생태계의 큰 질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데크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한다.
고양이는 개처럼 사교적이고 예의가 밝지 않지만 원래 그런 것이니 어쩌는 도리가 없다.
먹이를 주면 새끼가 서열별로 먹이를 먹는다.
고양이는 제 차례를 끈기 있게 기다리며 품위를 지킨다.
그런데 어미는 항상 제일 나중에 먹는다.
먹이를 적게 주면 서열이 늦은 녀석이나 어미에게는 몫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고양이는 개처럼 먹이통에 머리를 쳐박고 다투지 않는다.
어미가 품고 있는 모성애는 늘 감동적이다.
고양이의 모성애는 고양이의 천성에 새겨진 보석이다.
그런 본성이 종족을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도록 유지해 온 것이리라.
고양이는 때로는 친근한 이웃이고 때로는 종이 다른 벗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