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의 미학
내가 징검다리를 좋아하는 까닭을 딱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살아온 환경과 체험이 연관된 것은 틀림없다.
고향 마을 앞쪽에 장뜰이라는 시골마을로서는 제법 넓은 들판이 있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위천이 흐르고 있다.
맑고 수량이 풍부하며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하천인데
덕유산 줄기에서 흐르는 대자연의 축복이었다.
하천을 건너다닐 일이 많아서 임기응변식으로 돌을 모아서 딛고 다녔던 것이다.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돌이 놓여지는 것은 당연했다.
돌을 놓는 사람은 자의적 필요에 따른 남자들의 역할이었다.
아이들이나 여자들을 위해서 바짓가랭이를 걷고 힘을 쓰는 일은
멋스러운 한국식 신사도인 셈이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돌 위로 물이 흐르기 때문에
작고 납작한 돌을 놓고 가면서 신발이 젖지 않도록 했다.
그러니까 징검다리는 오솔길처럼 꾸불꾸불했다.
그런데 큰물이 지면 야속하게도 애써서 만들었던 징검다리가
쓸려 내려가서 다시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석으로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놓인 곡선의 징검다리를 좋아한다.
징검 다리 위에서는 긴장과 스릴이 있다.
돌에다 발을 내딛을 때 자칫하면 미끄러져 물에 빠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고 안정된 돌이 아니라 작고 때로는 흔들리는 돌을 건너뛰어야 하는 이 구조는 작은 모험이다.
물에 빠져 신발을 버리는 것은 재미난 벌칙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놀이인 셈이다.
문명의 발전이라는 대세 앞에 징검다리는 쓸려가기 바쁘다.
거창읍을 가로지르는 위천에는 댓 개의 골리앗 같은 다리가 놓이고 징검다리라고 몇 군데를 놓았는데
수백킬로그램이 되는 네모진 돌을 채석장에서 가져와서 포크레인으로 반듯하게 놓아두고 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놓은 다리다.
아무리 조경전문가가 설계를 했다고 해도 전통적인 징검다리의 치졸스러운 맛을 살리기도 어려우니와
사람들의 불평을 감당할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옛 추억이 새롭다.
물이 불어나도 쓸려나갈 일도 없고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거나 신발이 젖을 일도 없다.
직선 단거리에 돌을 배치하고 사람들의 보폭을 충분히 감안해서
설계한 매우 튼튼하고 효율적인 징검다리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효율과 편의를 숭상하는 징검다리에는
예전의 다리에서 볼 수 있는 엉성함과 투박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이 없는 것이다.
손잡아 주는 이가 없고, 빠질까봐 걱정해주는 눈길이 없고,
뒤뚱 뒤뚱 거리며 폭짝 뛰며 건너는 엇박자의 호흡과 용기 있는 발걸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