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아로니아 한 상자의 의미
청곡2
2017. 8. 27. 07:00
대학 동기 친구로부터 아로니아 한 상자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주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왔다는 것은 선물로 증여된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메시지를 보냈다.
00! 아내와 아로니아 열매를 한 알씩 따면서
굵고 실한 열매에 “역시 전문가의 솜씨는 다르네.”
어찌나 색이 곱고 알차게 영글었는지
“흑진주로구나, 이 많은 보석을 어디에 매달고 다닐까?”했다네.
대학 시절 한 때 하숙집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내게 보내온
과일 한 상자에 대해 내가 돈이나 돈에 유사한 상품을 보내는 것은
선물과 증여의 의미를 부정해 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기호가치, 교환가치, 사용가치라는 산업자본주의의 논리를 넘어서서
상징적 교환 가치의 세계로 이행하고자 했다.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교환을 수행해야 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나는 상징적 교환의 논리를 생각하며 머리를 굴리다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서한당이 자발적인 의사로 그림을 한 점 그려서 족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바위, 들국화, 목단을 소재로 그려보겠다는 것이다.
능숙한 그림쟁이가 아니라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 후에 한 장만이 선택될 것이다.
아로니아와 문인화는 서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다. 등가물이 아닌 까닭이다.
이런 상징적 교환은 소비지상주의를 벗어나게 하는 등대와도 같은 것이다.
또한 산업자본주의가 설치한 욕망의 집어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