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호미곶의 마주보는 두 손

청곡2 2017. 12. 16. 07:00

인체는 절묘한 좌우 대칭의 조각품이요, 예술품이요,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다.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두 다리가 있고 두 팔은 동체의 균형을 위해 좌우에 달려 있으며

말단에 손을 달고 있어 일을 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모두가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는 명소인 호미곶의 새천년광장에는 두 손의 형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나는 바다에 하나는 육지에서 서로 마주 보며 백 미터쯤 떨어져 있다.

조형물로 손을 제작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라서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사유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왜 하필 손일까?“라는 의문 하나가 실마리가 된다.


 

 

나 같은 철학 초급자가 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는 강신주 선생은 대대관계의 논리로 설명해 준다.

서양 철학은 기본적으로 동일성을 사유했다면 동양 철학은 관계성을 사유했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무엇이 손인지, 손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사유한다.

물건을 움켜 쥐는 사지의 한 기관, 도구를 잡고 일을 하는 손가락이 여럿 달린 손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서양 철학은 형상과 질료라는 구분을 통해서 손의 동일성을 찾으려고 했다.

동양 철학에서는 개별자와 관계라는 구분을 중요시 한다.

오른손과 왼손이라는 서로 마주 하고 있는 대대(待對) 관계를 중시한다.

 

하이데거는 진리를 빛이나 태양으로 상징한 반면에 동양에서는 태극 무늬로 상징된다.

파랑색과 빨강색이 곡선으로 경계 지어지고 경계도 직선이 아닌 파문형태로 그려진 것이다.

송나라의 정 호란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개별자들은 홀로 있을 수 없고 반드시 짝이 있다.”

 



들뜬 기분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 광장이다.

나는 로뎅처럼 턱을 괴고 혼자 물끄러미 손 형상의 거대한 조형물 두 개를 바라본다.

마치 인터넷 셋탑박스처럼 연신 온과 오프를 오가며 사유는 미로를 찾아가는 방랑자다.

 

바다에 있는 손이 나라면 육지에 있는 손은 타인, 타자다.

그것은 내 아내, 내 친구 000, 뜰의 소나무다

하나의 손이 내 육체라면 또 하나의 손은 내 정신, 의식이다.

하나가 이것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저것이다.

이것이 여당이라면 저것은 야당이다.

이것이 남자라면 저것은 여자다.

나는 이 편과 저 편을 번갈아 바라본다.

저 편에 가니 이번에는 반대편이 저 편이 된다.

나는 늘 옳지 않다. 그러면서도 옳다고 우기는 내가 보인다.

 




두 손은 경쟁하고 갈등을 겪고 투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며

어느 한 쪽이 옳고 그르거나,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보완적 관계요, 상생의 관계라며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라며

화합하고 화해하자며

두 손이 마주 바라보고 있다.

가장 부드러운 표정으로 상대를 향해 악수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