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이논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천연기념물 소나무에서 몇 발치 떨어진 곳에 다락논이 있다
그곳에서 유명한 소나무만 보고 왔다면 후회할 아름다운 풍광이 있다
다랭이논은 곡선의 미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생활속의 예술이요 민중들의 소박한 미의식이 드러난다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는 자연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보라! 저 곡진 논두렁의 부드러운 선을.....
억지로 꾸미거나 고민하며 계획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텅 빈 마음, 욕심없는 마음, 소박한 태도가 빚어낸 선이 아닌가!
다랭이논은 땅이 넓고 비옥한 펑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빈한한 산촌의 경사진 곳에서만 생겨난다
그런 조건에서 밭을 일구는 것은 조금 용이한 일이다
노면이 경사져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을 일구자면 관개시설이 선행되어야 하고 바닥이 수평이 되어야 한다
경사가 심할수록 다랭이논의 폭은 좁아질 것이고 그만큼 일은 힘들고 수확은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땀과 정성을 바쳐야 가능하다
산지의 고지대에는 자연수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랭이논 한 켠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향유할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워 한다
화양노송 구경 왔다가 덤으로 누리는 풍광이라며 좋아한다
일행 한 이는 노송일 굽어보는 자리의 빈 집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하길래
나는 이 다랭이논을 경작하면 좋겠노라고 응수하며 친교를 다진다
다랭이논의 진수를 향유하자면 성능좋은 사진기와 전문가의 테크닉보다
이러한 사유기 바탕에 있어야 한다며 나르시즘에 빠진다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려면 아랫쪽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역광에다가 그럴 여유가 없고 전문적 기술도 없는 내가 되는대로 몇 컷을 찍는다
모두 합쳐봐야 몇 평이나 되리오만
다랭이논을 일구는 늙은 농부의 꿈과 땀의 간절함을 공감한다
이런 공감력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경험이 제공하는 보상이다.
언덕 위에 부정형의 부채꼴 곡선으로 계단이 생기고
벼를 심기위해 물을 채워넣었을 때 찰랑찰랑한 바닥에 빛이 반사되는 장면은
더욱 아름다우리라
늙은 농부는 다랭이논의 수확물을 여러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복을 꿈꾸리라
이 마을에 욕심많은 이가 들어와 이 땅을 사고
무지막한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패악을 부리는 날이 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