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버스를 놓치고

청곡2 2018. 10. 15. 01:05

밤 두어 줌을 줍다가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평소보다 2~3분 빨리 통과한 것이다

시골 버스의 관행과 내 시간 관념과의 차이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단초로 삼는다

 

시간관념의 엄격성은 문명의 발달 정도에 비례하는 것 같다

문명이 요구하는 기본 규범으로 현대사회인들의 내면화된 통념이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왕성한 조직생 활을 할 때 몸에 밴 듯한 시간 관념을 유지했었지만 한가한 전원생활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많이 여유로워진 것 같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하루를 양분하는 시계가 있었으니 바로 해와 달이다

반세기 전에만 해도 개인간의 약속이나 마을 모임을 공지할 때 기준을 세 끼 식사 시간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저녁먹고 만나자」는 식인데 두루뭉술한 기준이 한 편으로는 여유와 해학이 담겨있지 않은가! 족히 두어 시간의 차이가 날 수 있는 오차의 범위까지도 받아들이는 인내와 관용이 놀랍지 않은가

오늘만 날인가 ,허구한 날들이 있는데 ....

한두 시간 늦다고 까탈스럽게 굴 필요가 없다는 소박하고 낙천적인 습속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웃과 돈을 거래하며 차용증을 주고받지 않아도 추수하고 갚겠다는 약속이 통용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신세를 진 은인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은인의 집 제사드는 날을 짚으로 꼰 표식을 실겅에 달고 기억하였다가 품으로 돕는 휴머니즘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농경을 위주로 하는 전통사회에서는

시간관념이 철저히 분화되고 치열하지 않았다

자연과 대면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여유와 융통의 낙천성이 배어있는 듯 하다

시간은 인간의 관리 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개로 흐르는 것이란 생각이 우세했던 것이다

 

우리는 반 시간 이하의 단위를 나타내는 표현이 없다

영어에는 한 시간을 1/4로 분할하는 개념인 quarter라는 표현법이 있다

그만큼 서양 사람들이 시간 관념이 엄격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를 조직화하여 능률성을 제고하기 위하서 시간 관리를 중시 하였을 것이다

시간이 인간의 합목적성을 위한 수단이 된 셈이다

용두사미로 끝나고 마는 일시적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생활계획을 짜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합리적 생활의 수법을 체험한다

 

방학이 끝날 때마다 그 계획은 탁상공론의 쓴웃음이 되었는데 인생의 황혼기에서도 삶이 시간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다

진중하게 계획한 일들도 연기되거나 이루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시간을 지배하기는 커녕 삶과 시간이 서로 헛도는 톱니처럼 헐렁하고 삐걱거린다

 

밤 줍다 버스 놓친 일은 약과에 불과할 뿐 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 인생의 버스는 더러 나를 일부러 외면하여 지나쳐 버리기 일쑤고 허망하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잦으니 이를 어저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