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걸으며
대구 시내에서 길을 걷는다
시간이 넉넉한 것은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에 비어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튼튼하니 복된 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무작정 걸어가면 친구들을 만날 때와 장소를 대충 찾아갈 것이다
행인에게 어린이 회관이 어느 쪽이냐고 방향만 가르쳐 달라고 하니 「굉장히 먼데요」라며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10킬로쯤 되는 거리란다
이 도시를 처음 온 사람처럼 이방인의 호기심과 낯설음으로 걸어간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고 편리하게 가려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수단이 아니라 걷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유희라고 여기기로 한다
참으로 구경거리도 많구나
쇼 윈도우 너머에 진열된 귀여운 고양이와 눈을 맞추기도 하고 문화행사 포스터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나는 시골 소년처럼 호기심 섞인 눈을 부지런히 굴린다
큰 길에는 많은 차량들이 달린다
이 무림에는 축지법을 쓰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러니 저들은 늘 쫒기듯 허겁지겁 살아갈 수 밖에.....
늘 빨리 가느라 사소한 풍경을 놓칠 수 밖에.....
한걸음에 보도 블럭 몇개를 건너는지 보폭에 집중하기도 하고
부지런한 발놀림으로 후끈한 열기에 배어나는 땀내음,
지나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살피기도 한다
나는 문명의 바깥을 소요하는 나그네라며 나를 규정하곤 웃음기를 띤다
제도와 문명의 안팎을 넘나들며 발상의 전환으로 사유의 폭을 넓혀가기도 한다
오래 걷다보면 오히려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삶을 관조하는 연습을 함으로써 삶의 의욕이 솟구쳐 오른다
내 생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간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다가오는 나의 현재가 순간순간 과거가 된다
살아있는 내가 길을 간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진실하고 투명한 내 실존적 삶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