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수원성 성곽로를 걸으며

청곡2 2019. 4. 23. 10:49


수원 화성 성곽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하며 걷는 사람들,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가족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

 애완 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또 내가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다니는 사람들과

흙과 돌과 나무와 구름과 또 어떤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들 앞에서 사람들은 연신 풍경들을 소유하며 저장하려고 한다

유적이며 풍경은 순순히 포획되어 수 많은 이들의 의식 안에서

제각기 원모습을 잃은 채 변형되고 변종이 된 채 크고 작은 차이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장된 이미지와 선행 의식을 때로는 고착적으로 때로는 수정하고 보완하거나 헉신하면서 사유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기의 의식 수준만큼 인식하는 것이다

 

권위있는 연구와 해설 등이 보다 객관적 안목을 제시하며 공감을 얻지만 주관적 인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나 연구 기관 간에도 시대를 통해 상이한 해석과 펑가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소박하고 유치할 수도 있는 나만의 사유를 즐기며 당돌하고 때로는 무모함을 무릅쓴 표현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순수한 내 발상이 아님이 당연하다

다만 추종하는 모방과 복종보다 무모하더라도 당당한 주체성을 우선하는 까닭이다

 

원래 산을 이용하거나 인공 언덕을 만들어

마치 긴 띠를 두른듯한 성이 한 구역을 감싸 안고 있다


성곽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넘나들며 성내와 성외의 구분이 임의적일

조감하는 새처럼 자유롭다



이 성을 만든 정조 임금의 발상, 다산 선생의 마스터플랜과 세부 계획서와 도면등을 떠올리며

당시의 축조 정황을 객관화 하려고 상상의 타당성을 높이려 한다

그리고 직접 노동을 한 백성들의 노고와 노역의 부담과 고통을 생각하며

멍치를 찌르는 듯한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성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라는 객관적 설명에 전적으로 동감하기 어려운 것은

아름다움과 친근감을 주는 까닭이다

살벌하고 위압적인 군사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의 전쟁 놀이터 같이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풍경들,

학술적 가치로서의 유적만이 아니라 공공의 선익에 이바지하는 생활과 여가공간이 되니 엄청난 시혜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