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서
이발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상반신에 흰 덮개를 두르고 온순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긴 노인 한 분 다음이 내 차례다
싹둑 잘린 반백의 머리카락다발이 바닥에 낙엽처럼 추락해 있고 나무 등걸 주위가 파르랗다
이발사는 익숙한 솜씨로 연신 가위질을 한다 수십년을 통해 체득한 눈썰미와 섬세한 감각을 익혀 어떤 일정한 스타일에 근접하려 한다
시골의 권위적 이발사는 고객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가진다
이발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고객이 아니라 이발사의 규율과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포로일 뿐이다 고개를 마음대로 돌리거나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망토가 둘러진다
취향이나 기호 등을 요구했다가는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
고객 우선이니 경쟁 체제 따위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의 산물이라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개별 두상이나 고객의 주문을 반영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정하는 표준에 고객은 묵시적 동의만이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불과 몇 가지의 일반적인 스타일을 확산하여 무던하게 만드는데 익숙하다
그는 상술을 위해 친절을 가장하거나 고객의 요구를 일일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삭발을 하지 않는데 왜 인간은 하는 것일까?
인간의 사회화의 상징이라 여겨진다
성별에 따라 두발 형태가 다르고 역할과 신분에 따라 달라지기 한다
예전의 여성의 땋은 머리는 미혼의 상징이고 여학생의 상징이었다
스님의 까까머리, 군인의 스포츠형 머리 등은 어떤 집단의 생체 유니폼이기도 하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일상이요, 개인의 문명화 작업이다
자연스레 길어지는 머리카락을 방치하지 않고 잘라냄으로써 자기 변화와 쇄신을 이루게 한다
이발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통과의례다
이발사는 통과의례를 집행하는 원로의 주술사인 셈이다
나를 낯설게 여긴 내 또래의 이발사가 내 정체를 궁금히 여긴듯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리 와 앉으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