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감을 따고 깎으며

청곡2 2019. 11. 8. 09:17

이틀 째 감을 따서 깎는다

집 입구에 있는 한 그루에서 여닐곱접은 달렸는데 벌써 석 접은 따서 깎는다

감따는 장대 높이가 미치는 곳까지만 따보려고 한다

 

감을 깎아서 곶감을 만들어보려고 올해에 처음으로 시도한다

일이 번거로울 것 같아 시도하지 않았는데 직접 해보니 솔솔한 재미와 성취감이 있다

한 달 이상을 잘 말려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지만

시장에 내놓는 상품성이 성공의 기준은 아닌 것이다

 

감을 깎는 일도 즐겁고 의미있는 사색의 시간이다

감을 깎는 일에만 집중하니 일상선의 체험이라 여긴다

감 껍질과 속살을 분리하기 위해 왼손으로는 감을 쥐고 서서히 회전시키고

오른손에는 날이 선 작은 칼로 껍질과 속살 사이를 파고들어가는 칼맛도 즐거움이다

 

껍질이 벗겨지며 수북히 쌓인다

껍질은 속살을 보호하는 갑옷이라 곳곳에 반점과 상처가 있다

감 한 개에도 따지고 보면 자연의 깊은 이치가 담겨있다

갑옷을 입고 외풍과 싸우던 감이 속살을 드러내고

채반에 가지런히 누워서 볕에 마를 것이다

 

고운 속살로 채반에 누운 감들이 볕과 바람에 마르는 날이

착착 쌓인 연후에야 비로소 곶감이 된다

자연이 주는 깊은 맛은 숙성에 필요한 시간을 요하며

기다림과 정성이 따라야 하는 것을 체험으로 배운다

 

감을 잘 말리기 위해 엮어서 매단다

감의 짧은 꼭지에 단단히 묶지 않으면 감의 무게에 의해 떨어지고 만다

쉬운 일 같지만 이런 일도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일처럼 보여도 순서와 방법이 있는 법이니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경험의 스승 앞에 공손해진다

 

아가야 곶감 맛이 어떠니?

천천히 씹으면서 음미해 보려무나

그 맛에 담긴 감나무의 열정과 해와 달의 수고며 누군가의 손길과 정성을 생각해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