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담화

입시 출제의 여담

청곡2 2020. 12. 5. 20:54

일부 수능 문제가 뉴스에 보도되고 시청자들이 실색하며 입방아에 올린다
문제의 오류가 법적 문제는 아니라 해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경상북도 고등학교 입시의 출제 위원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약 한달 전에 소집되어 담당과목별로 문제를 출제하고 일체 외부와 차단하다가 입시 당일에야 감금 상태에서 해방되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출제위원장의 확고부동한 출제 원칙은 문제성이 추호도 없어아 한다는 것이다
좋은 문제를 만들기보다는 문제성이 없는 문제를 만들어아 한다는 것이다
그 원칙이 젊은 교사인 나에게는 좀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교직 경험이 쌓일수록 이해가 되었다

정답이 애매하여 두 개 이상이거나 없다면 뒷수습이 상상을 초월할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입시 본부에서는 출제자가 문제를 만들면 검토하는 작업을 하는데 타교과 담당자들에게 수험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서 흠결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라고 하는 절차를 거치기도 했다

음악시험에 경상도 민요를 찾으라는 문제가 있었다
타교과 검토 위원이 우스갯 소리처럼 악보를 전혀 모르는 자기도 정답을 찾겠다고 했다
「날 좀 보소」라는 가사에 보소라는 말씨는 경상도 사투리 아니냐며 지적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맞아 맞아 호응을 하고 본부에서 타당성이 있다며 한바탕 칭찬을 한 후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가사를 빼고 악보만 제시했던 것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인쇄작업을 하던 중에 유의미한 검토가 인정되어 수만 부가 인쇄되다가 인쇄정지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험 당일에 출제위원들은 해방의 기쁨을 맛보는데 귀가한다는 기쁨 못지 않게 문제점이 보도되지 않은 안도감도 포함된다

수능이라면 그 중요성이나 관심도가 어마어마하여 완벽한 출제가 호락호락안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