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무사유
<무지는 용서하지만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는 아렌트의 말은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도 적용되는 경구다
배우지 못했거나 무관심으로 어떤 사실, 현상에 대해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생긴 오류나 판단 착오는 무지의 영역이다
무사유는 관련된 사물, 사건에 대해 의미나 본질에 대한 생각없음이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과 관련하여 판결을 내린 법관을 넥타이를 맨 살인자로 부르며 무사유의 전형으로 여겼다
학살이라는 만행의 의미와 본질을 사유하지 않고 법률을 적용하는 법관들을 향한 냉엄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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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나 본질 자체를 파악하고 판단하지 않고 선전이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오늘날의 대중들도 이에 속한다
흔히들 팬덤이라고 하는 극히 편향되고 극렬한 성향을 띄는 지지층들이 대표적 사례다
얼마나 많은 거짓 선동이 최근에 있었는지 건전한 의식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 구체적 사건들을 굳이 열거하지 않는 것은 진영 논리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숱하게 많은 거짓 선동에 온 나라 전체가 극심한 분열과 대결로 흔들렸고 이런 기회를 정권 찬탈로 이용하는 지도자와 그 무리들의 생생한 현실을 보면서도 사유하지 않는 대중들은 무감각하게 현실을 바라보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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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정치 의식을 가진 시민은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설령 어느 한 쪽의 지지 성향이 있더라도 개별적 사안, 사건마다 지지와 비판이 따르는 것이 정상이다
설령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라고 해도 동일율이 적용되어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 않고 나는 어느 한 편의 진영 논리에 따르는 이들은 성숙한 시민이 아니라 진영의 포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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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숙한 정치의식을 가진 깨어있는 시민이 되려고 노력한다
극심하게 대립하며 싸우는 혼란한 진영의 판 밖으로 나가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안에서는 제대로 보지 못하니 밖으로 나가야 전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게 가능할지 확신할 수는 없다
방송 언론 환경이나 여타의 매체들이 전하는 정보가 진실인지 허위인지 교묘하게 뒤섞여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판단이 쉽지 않을 때는 냉담하게 유보할지언정 진영의 패거리에 합류하지는 않을 것이다
얇은 귀를 닫고, 경솔한 입을 막고 열린 가슴으로, 신중한 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