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곡의 글방

설날의 추억(4) - 지신 밟기(1)

청곡2 2015. 2. 21. 07:00

 

53년 뱀띠로 시골에서 태어난 내 어린 시절의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전후 복구와 산업화의 첨병인 육바리 재무시(GMC)


신작로에 행차를 할 때는 위세 등등한 먼지가 일었고 자갈들이 튀었다.


 


한가한 도로에 어쩌다 자동차 두 세대가 붙어서 가면


동네 꼬마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달리는 트럭의 뒷꽁무니에 매달리거거나


함정을 파서 빵구를 내려던 악동들의 장난이 횡행(橫行)하던 시절이었다.



 

이맘 때가 되면 마을이 온통 야단법석이었다.

지신밟기 - 풍물패거리들이 일으킨 소요(騷擾)로 고요하던 마을에는 분란(紛亂)이 일어난다.

상쇠의 씻김새 좋은 소리에 파란(波蘭) 많은 인생살이가 드라마가 되고 춤과 노래가 된다.

 

 

동민들은 개인적인 따분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마을의 부족민이 되어 잔칫판에 가담하게 된다.

바람처럼 불어온 평화의 축제! 그 멍석판이 펼쳐지며 온 동네가 들뜨고 어수선하다.

 

 

 

 

 

 

 

반세기 전의 그 풍경, 그 흥청거리는 가락과 들뜬 분위기에 도취되던 그 시절이다.

온 마을이 풍물 소리에 귀를 모으고 문을 열었다.

당산나무에, 우물에, 정짓간에, 마굿간에, 곳간에,

그리고 그 악동들을 환호하게 만들던 지신밟기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어찌 그리도 횡액이 많았던 것인지......

고달픈 한숨에, 눈물 마를 날이 없던 고단한 삶의 역정들.

 

장독간 정안수에 달빛이 엄숙하고, 삼신할미께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그 간절한 염원으로 온갖 사물마다 관장하는 신이 있었다.

 

 

 

 

 

 

 

지신놀이가 펼쳐지는 정초의 세시풍습이다.

요새야 전문 춤꾼들이 있어 능수능란한 춤사위를 감상하는 일이 수두룩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구경이 어디 쉬운 것인감.

 

동네방네 사람들은 부푼 가슴으로 잔치를 기다렸고

그런 참여와 기다림 속에 잔치는 늘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나는 그 시절의 순수한 감성으로 몰입하던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상쇠의 늠름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솜씨며,

분방(奔放)하고도 익살스런 소고춤이며

때론 샛빨간 루즈와 부품한 가슴으로 분장한 여장 춤에 뱃가죽이 땡기도록 웃었다.

 

한 번은 그 여장 남자가 하필 아버지일 줄이야......

동생과 나는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런 신명을 낸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리움이 사무친다.

 

 

 

 

지신밟기는 이웃 사랑의 전통이 풍류와 결합된 놀이의 축제다.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패거리를 만들었고

농익은 개인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뽐내며 끼를발산하는 예능과 오락의 단체이기도 하다.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마을을 위한 기여와 헌신의 보람으로 뿌듯해 했으리라.


 

 

상쇠가 자진모리 두 장단으로 소리를 메긴다.

어허루이 지신아 지신아 (풍물)/ 천지지동을 이루자(풍물)

메김 소리에 나머지 풍물꾼들이 장고와 북과 징으로 자진모리 두 장단의 소리로 받는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