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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당의 문인화방

운향선생을 추억하며

 

누가 지우개를 들고 내 인생을 지우고 있다.

집들이 지워지고 길들이 지워지고

나는 지금 어디쯤 서서 지워지는 중일까

 

2006년은 실제로 운향 조우정 선생이 지워지고 있었다.

김재진 시인의 시 일부를 화제로 차용한

운향선생의 그림 한 점을 보다가 십년 전으로 되돌아 간다.

 

2006년 9월에 세상을 떠난 운향 선생의 마지막 그림인 셈이다.

위의 그림이 2006년 서협초대작가전에 발표 되었으니까.

그림을 그린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이 당시에 암과 투병 중이었다.

그러니까 죽음의 문턱에서 그린 그림인 셈이다.

여사는 김재진 시인의 시를 몇 귀절 빌려 당신의 심경을 드러내신 것이다.

 

삶의 종점에서 겪는 허무와 불안을 그림 한 점으로 승화한 것이다.

죽음 앞에선 당신은 눈오는 날의 동백꽃 한송이가 되려는 것이다.

 

 

 

 

내가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서한당이 느닷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2000년에 개원한 운향 선생의 문인화 교실을 두드린 이후의 일이다.

당시 운향선생은 포항여성회관 관장으로 마지막 공직자의 길을

끝내고 문인화 연구실을 개원한 것이었다.

퇴임식을 마친 그 날 오후에 문인화연구실을 오픈한 일은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삶의 프로젝트였고 나는 한없이 부러워했었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고교시절부터 장흥의 수재라 불리다가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다가 여의치 않아

공무원의 길을 걸으신 것이다.

그 분이 별세했을 당시 지역 언론에서는 '포항 여성의 대모'로

그 분을 극찬하며 애도했었다.

서한당은 제자들을 대신해서 추도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었다.

 

선생님!

퇴직 하시고 화실을 개원하신 이래 6년째 문인화를 배우는 제자로서 선생님과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이제 접어야 합니다.

저희 제자들은 문인화 부문의 국전 초대작가이신 선생님으로부터 그림 공부만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으로서 고매한 인격과 높은 학식 그리고 고결한 정신과 단아한 품위와 온화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선비였습니다.

당신의 인품과 사상과 학문이 문인화 작품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스쳐가는 말씀 한마디와 일상 행적 속에서 선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붓으로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그 정신과 품위를 흠모하고 본받으려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30년 가까이 문인화를 하시며 이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선비의 일편단심처럼 마치 구도자처럼 치열하게 문인화와 서예와 전각의 길을 걸었습니다.

3년 전 암수술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시기 전날 늦은 밤까지도 화실에서 제자의 낙관 도장을 새기면서

털끝만큼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었던 그 꿋꿋한 기개를 저희는 보았습니다.

수술하신 후 항암 주사를 맞아 쇠약해진 몸으로도 회원전을 지도하시며 딱딱한 기와를 전각도로 파내시는 분이셨지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병원에서 낮은 목소리로 제게 “일필하고 싶다.”하시며 활화산 같은 창작 의욕을 보이신 분입니다.

 

선생님은 당신에게 매우 엄격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내면적 수양을 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창현 박종회 선생님께서 문병을 오신 적이 있습니다.

꺼져가는 의식과 말 한마디조차 어려운 기력인데도 사사받던 스승 앞에서 소녀처럼 화사한 표정을 지으시며

남은 기력과 정신을 집중하여 행여 흩어진 매무새를 고치려 머리칼을 몇 번이나 추스리고

링거 바늘로 퍼렇게 멍든 팔을 보이지 않으려 소매를 당겨 내리던 단아함을 저는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온화하며 낮은 소리로 말씀하셨지만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용감한 행동파였습니다. 

여성회관 건립 기금 조성을 위해 상경하셨을 때 지역 출신 정치인들을 찾아가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실 때는

열혈 청년 같으시면서도 당신이 이루신 일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보이셨지요.

여성 회관을 운영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포항 여성들이 문화적 예술적으로 높은 소양과 격조 높은

취미생활을 하게 할까 많이 고민하셨지요.

                                                                       (추도사의 일부)

 

 

이 그림을 보며 나는 추억의 한 장면을 포착한다.

선생을 모시고 서한당과 함께 청도의 각북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 가서

목암 유장식님의 서각작품을 둘러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안에서 읊조리듯이 덕담을 해 주셨다. 

부부가 제각각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던 우리 부부에게

"두 분의 노년이 얼마나 향기로울꼬."라시던 추억으로 돌아간다.

 

그 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