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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문중기록

황석산성 순국선열 순의 414주년 제향

 

 

 

 

 

 

 

 

 

 

 

 

 

 

 

 

선조 대에 일어났던 참담한 비극, 임진란과 정유재란.........그 참담한 비극이

숙종조에 이르러 왕명으로 황암사를 건립하고 곽준 안의 현감과 조종도 함양 군수를 위패 봉안하였으며

별사에 유명개 의사와 정 용 의사의 위패를 봉안케 하였다.

지금은 모셔진 모두 아홉 위령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아는데 추모위원회에서 전공을 감안하여 추가로 위패를 봉안하였으리라.

그런데 위령 가운데 황석산성 전투와는 관계 없는 분이 바로 정용 의사이다.

그 분은 정유재란(1597) 당시 황석산 전투가 발발하기 수년 전에 일어난 임진왜란 진주성 2차 대첩(1593)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분전하다가 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왜놈의 칼에 맞아 죽느니 장렬한 죽음을 택하여 자신의 조카 둘과 함께

진주성 촉석에서 남강으로 투신하여 자결한 분이다.

 

그것도 이미 나이가 50 중반을 넘어선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노쇠한 육신으로

정의의 길을 찾아 불의에 온 몸으로 싸운 분이다.

 

휘 용 의사가 나의 14대조이다.

님은 진주성 대첩에서 산화하기 이전에 경상도 지역 곳곳을 누비며

왜군을 응징하였으니 .......

그것도 온전한 자유 의사로.......

 

당시 관직에 있던 분들은 국록을 받는 신분으로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명개 의사와 정 용 의사는 관직에 있지 않은 분이었으니 더욱 숙연해진다.

 

 아래 사진의 중간에 있는 위패가 <의사 정 공 용>

그 앞에 놓인 술 한잔에 대장부로 살다 가신 의사의 영혼이 위로 받으리라.

   

 

 

 

 

이 무덤은 황석산 전투에서 

끝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 세상을 떠난

함양과 인근 지역 일대의 관군과 민간인들의 시신을 합장 한 곳이다.

상석에는 어떤 글도 없다.

수천 수만에 이르는 그분들을 이름을 어찌 기록 하리오

                                                                                    그래서 잠시나마 참배를 하는 내 마음이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