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나 거미의 작업과정을 보면 놀랍다.
<원래 그렇다>라는 눈으로 바라보면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들의 작업 능력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데 보잘 것 없는 어떤 사람의 노동이라 하더라도 거미와 꿀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인간은 자기가 만들려고 하는 결과를 예상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작업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물질의 형태를 변화 시키고
작업 방식의 법칙을 스스로 찾고 의지를 강화 시켜 가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머리와 사지와 같은 신체 기관의 자연적인 힘을 빌어
자기의 필요에 맞게 자연물을 변화 시키고 변화된 자연물을 자신이 전유하게 된다.
그러한 노동은 외부 세계에 대한 변화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변화 시킨다.
자기 안에 잠재된 능력, 힘을 일깨우는 것이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경주의 한 석공 명장의 감동적인 일대기에 감동한다.
집 채 만한 바위에서 석불을 탄생 시키고 경주 남산의 파괴된 석불을 보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긴 장마 끝이라 잔디가 더부룩하게 자라고 그 사이에 잡초가 자라고 있다.
조금 온도가 내려가면 잔디 제초제를 치고 예초기로 깎아야겠다.
전원 주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노동의 수고가 따라야 한다.
노동에는 신체적인 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지력과 주의집중과 같은 힘이 필요하다.
무릇 사회적으로 내세울만한 성과나 업적을 쌓은 이들은 무언가 다르다.
신체적인 힘보다도 정신적인 힘을 통해 의지를 단련시켜 목적 지향적인 일관성이 있는 분들이다.
일평생을 돌을 다듬는 일만을 했던 명장은 그 분야의 전문로 존경을 받고 좋은 대우도 보장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노동을 강요하고 소외 시키고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 시킨다는 점을 매우 증오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평생을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다 보면 불구적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한 가지 직업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자로서의 마르크스의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가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배타적인 영역을 갖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대로 숙련된 일꾼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명장이 보기에는 어린애 장난 수준이지만 돌을 다듬는 작업도 시도한다.
일당을 주고 잔디를 깎는 이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직접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노등을 향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