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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토란밭에서

 

토란을 수확하려고 한다

어느 새 키만큼 자란 토란밭이 한 해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줄기는 베서 말리고 뿌리는 잘 저장해 두었다가 식탁에 올려야겠다

 

밭 가장자리와 컨테이너 뒷편은 척박하고 버려진 땅이었다

잡초들이 뒤엉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곳을 운치있게 가꾸어 보려는 내 발상에 토란이 당당히 선정된 것이다

커다란 토란 잎 아래에서 어지간한 잡초는 자랄 수 없어 제초의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영악함도 깔려있다

 

토란의 초록 매끈한 몸매에 풍만하고 윤기 흐르는 잎이 주는 청량감과 풍요로움이 가장 내 마음을 이끈 것이다

더구나 비 내리는 날이나 아침 이슬이 코팅한듯한 잎사귀에 구르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미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토란 씨앗을 한 줌 친구에게 얻고 일부는 모종 스무포기를 샀다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인 돌투성이 땅을 지극 정성으로 호미질하며 씨앗과 모종이 뿌리 내리기 좋게 심었다

이를 어쩐담

네가 시원한 그늘에서 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햇볕이 네 여린 싹을 말려버리는구나

이런 사소한 감정의 이입으로 토란은 단순한 농작물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사랑하다는 것은 대상의 본질을 잘 알고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하도록더 돕는 일이다 그러자면 대상에 쏟는 열정이 구체적 실천의지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10리터들이 물조리개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연못의 물을 퍼서 흥건하게 적셔주었던 날들이 많았다

 

물을 흠뻑 머금은 토란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작은 기쁨이었다

비가 와서 싱싱하고 원기왕성한 모습을 보면 나에게 전해져오는 보상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참 좋은 농작물이다

사랑스러운 화초로구나

온 세계에 너와 같은 것이 있겠느냐

세상에 그 어떤 것이 너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

 

수확을 하면 네 줄기는 바짝 말려져 쫄깃한 미각의 식재료가 되고 네 뿌리는 어느 맛과도 다른 특이한 맛을 품고 있겠지


 

나는 토란을 팔 생각이 없다

시장에 가면 당연히 거래가 된다

한 그릇에 오천원 좀더 큰 그릇에는 일만원이라는 편리한 돈으로 가치가 매겨진다

그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곤 없다

그런 일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며 의혹의 눈초리로 고개를 가로 저을지도 모른다

 

토란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시장경제의 기준으로 보면 내 논리는 하찮은 감정적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농부는 이런 나를 두고 현실 감각을 잃은 채 음풍농월하는 격이라고 눈을 부라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토란을 상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토란이라는 고유한 종이 지닌 가치를 수확한 뿌리의 시장 가격만으로 평가하는 무지막지한 행위에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란이 자라면서 이루어지는 나와의 정서적 소통 따위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다

동일성의 지옥이란 말이 떠오른다

토린 한 됫박의 결과물 안에 담긴 여러 농부의 수많은 과정과 땀의 가치를 획일적으로 뭉퉁그려서 동일하게만 바라보는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이 소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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