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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의 즐거움

능소화 야단 벅구통 능소화가 야단 벅구통이다타고 오르기 좋으라고 만들어 놓은 대문의 아치에 걸터 앉아 일제히 나팔을 불어댄다나팔처럼 생긴 꽃이라 하늘에 풍악을 울린다이 도도한 풍악은 이 여름의 축제인 셈이다능소화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예전의 아스라한 추억이 떠오른다벅구통이란 비유는 오래 전의 사적 경험이 섬광처럼 스쳐가서 생긴 것이다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풍악이 울리는데 온 동네가 떠나갈듯이 난리통이 벌어진 축제가 있었다평소에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이런 느닷없는 이벤트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호기심과 흥분으로 몰고 갔다깽과리 소리가 난리통의 주역이라 상쇠는 흥을 이끄는 주역이다 이 풍물패들 중에 자루가 달린 소북을 치면서 날렵하고 흥이 있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곤 했다그 소북을 벅.. 더보기
작은 화단 주택 마당을 온통 콘크리트로 덮은 사람들도 주위에 더러 있다풀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아예 대지를 덮으려는 것인데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수많은 화초들이나 잡초들을 적으로 귀찮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풀을 뽑고 물 주며 가꾸는 것을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여기는 생각도 전제되어 있다손바닥만한 구석진 공간에 기와로 경계를 두르고 화목 몇 종을 심어 놓으니까 발길이 잦다잘 살고 있는지 궁금한 까닭은 내가 대상과 맺은 우호적인 관계성 때문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기쁜 마음이 생기고 돌보고 싶어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는다 내 수고가 징검다리가 되어 이전의 주객을 분리하던 경계가 느슨해지고 함께 존재하는 유대감이 솟아난다이 손바닥만한 화단이 내 삶의 새로운 배치가 된다나.. 더보기
꽃밭에서 낮달맞이가 여기서 오늘 첫 꽃망울을 열어 젖힌다아침 햇살이 화사하게 얼굴을 비추자 환한 웃음, 노란 청순함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대한다아침에 운동하러 나갈 때도 꼭 뒷뜰을 돌아가며 눈맞춤을 하고 간다꽃들은 저마다 독창적이고 고유한 형태와 색과 향을 가지고 있다자연은 최고의 독창적 예술가요 꽃은 예술 작품이다그러므로 꽃들이 지닌 가치의 위계도 서열도 매길 수 없다 그건 사람들이 개입해서 만들어낸 허위의식의 소산이다모든 꽃들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 꽃들은 혼자 놀이에 빠진 빠진 어린 아이와 같다특정한 목적도 없이 스스로 즐기며 제 놀이에 몰두해 있다나는 그런 꽃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려 말을 건다 더보기
방풍 - 우산살로 받친 은하계 네 이름을 방풍이라고 한단다 아마 너는 피식 웃을지도 모르지사람들이 붙이는 이름이란 것이 사소하고 허접한 어떤 우연적인 계기로 인한 것이란다네 앞에서 그윽한 눈으로 경탄하며 네 별명 하나를 불러본다 무수한 별이 모여 하나의 성단이 되고 그것을 떠받치는 기둥들이 정교하게 방사형으로 펼쳐진다저 작은 우주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신비를 알려주는 자연의 상형 문자로구나 더보기
북돋우다 토란을 북돋우기 위해 고랑의 흙을 퍼서 토란의 줄기 아래를 둥그렇게 쌓아올린다토란이 가슴팍을 열고 어깨춤을 춘다지하 막장으로 파고들며 수분과 양분을 찾아나서는 수천 갈래의 실뿌리들과 초록 손을 펴들고 여름의 햇볕을 긁어 모으는 파라솔 같은 잎들도 생기로 화답한다북돋움은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요, 친교의 스킨십이다 더보기
채반 위에서 마르는 고사리 아침에 고사리를 제법 많게 꺾어와서 삶아 말린다나는 여러 해 전 부터 고사리 채취를 하지 않는데 아내는 틈틈이 꺾어온다본인은 먹지도 않는데도 나누어 줄 사람들이 있어서다 열 군데란다자매들과 화실 지인들, 일가 친척들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 주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리라지금 채반 위에서 삶긴 고사리 줄기들이 마르고 있다소도 먹지 않는다는 고사리를 삶아서 말리면 고사리만의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한식에서는 제법 대접을 받는 고사리다이런 고사리를 음식으로 활용한 선인들의 생활의 지혜는 놀랍다그런데 고사리를 말려보면 생물의 1/10로 크기와 중량이 감소한다그런데 조리하기 위해 물에 푹 담가놓으면 불어서 원래처럼 통통해진다고사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다 제 시기에 꺾지 않으면 줄기가 억세서 식용을 할 수가 없다그래.. 더보기
장미가 피어나고 작년에 지인 한 분이 선물한 미니장미 삽목묘가 잘 자라 올해에 꽃을 피운다출입문 입구에 묘목 너댓 개를 심고 타고 오르도록 철제 아치를 설치했는데 원하는대로 되어간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더니 그 말이 과연 맞구나한 송이 한 송이의 개체보다도 군집하여 이룬 풍경에 마음은 흡족하고 천천히 두루 살펴보면 눈은 호사를 누리고 마은은 기쁨으로 차오른다단단하게 뭉쳐 있던 꽃몽우리들이 바깥부터 서서히 막을 열더니 감싸고 있던 고운 잎들이 벌어지며 품고 있던 향기를 발산한다한참 바로보고 있으면 생명의 생동감을 느낀다 같은 꽃이면서도 어느 하나도 동일한 모습이 아니다 피어나는 시간, 꽃의 방향, 색깔까지 모두 다르다동일한 장미인데도 서로 모두가 다르다 더보기
기린초 기린초 노란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수십 년 전에 어느 야산에 갔을 때 제법 큰 바위 옴팡진 곳에 피어있던 야생화가 나를 홀려 발 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쳐다보고 집에 와서 이름을 찾아보니 기린초라는 풀이었다한적한 산길에서 샛노란 작은 꽃들이 무수히 피어서 거무튀튀한 바위의 품에 든 모습이 어찌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기쁘게 했는지.....나중에 뜰이 생기면 꼭 심어서 함께 있고 싶었다기린초는 까탈스런 성미로 개체수가 적어 귀한 대접을 받는 꽃이 아니라 아무데서나 뿌리 내리고 줄기를 잘라서 꽂아두기만 해도 뿌리를 내리는 억척스럽고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그래서 잡풀이 많고 관리가 어려운 곳에 심어두니 왕성한 세력권을 만들어 다른 풀들을 이긴다기린초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노란 작은 별들이 많이 보인다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