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읍에는 문화 거리라 이름 붙인 거리가 있다
예전의 낡은 건물들을 살려서 정겨운 느낌을 준다
연말이면 꼬마 전구로 연결한 오색 불빛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본 사진 자료는 처음으로 본 양철 곤로보다 훨씬 발전된 제품이다)
이 거리를 걷다가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하나를 회상한다
「우리 이제 장작 짐 안가지고 다녀도 될 것 같아」
이 한 마디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시의 우리 자취생들에게는 산업혁명에 비길만한 낭보였다
밥을 지어먹기 위해서 매주 한 번씩 통장작을 만원 버스에 싣고 다녀야 했다.
짐을 내릴 때 발에 짓밟혀 줄로 묶은 부분이 헐거워져서 장작들이 이리저리 나뒹굴어
수습해야 하는 일이 사춘기 소년에게는 창피하고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어디에 가면 희한하게 생긴 곤로란 것이 있는데 엄청나게 편리하다는 것이다
양철로 만들었는데 심지를 아랫쪽 석유통에 담가서 불을 붙이는 오늘날의 스토브의 원조인 셈이다
과연 그 곤로라는 문명의 이기가 주는 행복의 체감 지수는 어마어마했다
장작을 버스에 싣고 다니던 쪽팔리는(당시의 표현) 불편과
일일이 장작을 쪼개서 종이 몇장의 불쌀개로 불을 지피던 수고를
온 몸으로 체험한 소년이었기에 더욱 큰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그 철물점이 있었던 자리 언저리에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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