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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문중기록

퇴계선생의 어떤 인맥(2)


  

(이 글은 홍곡이 쓴 글인데 폰으로 보낸 메세지다)

 

청곡

자네가 보내준 자료와 내가 아는 바를 엮어서 다시 정리해 보내네.

 

진양정씨 농산리 입향조 충의교위 鄭純공은 1남 3녀를 두셨는데 아드님이 팔완당 鄭夢瑞공이고

큰딸의 남편이 全轍,

둘째딸의 남편이 李술, 세째 딸의 남편이 桐溪 鄭蘊 선생의 할아버지 진용교위 鄭淑이었네.

 

큰사위 全轍은 퇴계 선생의 장모님의 남형제로 퇴계선생의 부인 권씨의 외삼촌이었네.

퇴계선생의 장인 權瓆은 유배에서 풀려나자 가족을 거느리고 처가곳인 영승촌에 우거했는데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을앞 정자에 올라 놀기를 좋아했어.

그래서 사위인 퇴계에게 편지를 해서 이름을 하나 지어달라고 했다는구만.

그래서 퇴계선생이 四樂亭이라는 이름과 시를 지어보냈대.

그리고 퇴계선생의 장인 권질의 호가 바로 사락정인데 아마도 그 이후에 자신의 호로 썼던 것 같아.

그런 사정과 시가 들어있는 글이 바로 퇴계선생의 寄題四樂亭 幷序야. 지금 사락정에 걸려있는 시판 내용이지.

그리고 그 정자에 걸려있는 사락정 현판 글씨가 바로 퇴계선생 글씨야.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곳에서는 권질의 행적은 사라져버리고 전철 선생의 호가 사락정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어.

 



寄題四樂亭 幷序

安陰縣有村曰迎送山水淸麗土地沃饒有全氏世居之舊構亭溪上頗幽絶外舅權公自謫所歸擕家南往寓居是村得是亭而說之晨往而夕忘歸以書抵京求亭名與詩余飽聞勝槩欲一往而不得者今十年矣顧以村居之中可樂者非一求其可與衆樂者又可以獨樂者惟農桑漁樵四者爲然故名亭曰四樂而係以詩


 


시제를 사락정으로 하여 부치다. 서문과 함께.

안음현에 마을이 있는데 이름이 영송이다. 산과 물이 맑고 아름다우며 땅이 기름져서 전씨들이 대대로 살던 옛터가 있다.

시냇가에 정자를 지었는데 자못 그윽하고 뛰어났다.

장인어른 권공이 유배지로부터 돌아와 집안을 이끌고 남쪽으로 가 이 마을에 우거했는데

이 정자를 보고 기뻐하여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기를 잊었다.

서울로 편지를 보내어 정자 이름과 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뛰어난 경치를 익히 듣고 한번 가보려고 했으나 가지 못한지가 이제 십년이나 되었다.

생각해보면 시골에 살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니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고 또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니

농사짓기, 누에치기, 고기잡기, 나무하기 이 네 가지가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정자의 이름을 사락이라 짓고 시를. 지어 잇는다.

 

이런 서문을 쓰고 농상어초 네 가지 즐거움을 시로 지어 보낸 것이 기제사락정 병서 내용이다.


 



퇴계의 장인 權瓆공의 아버지 權柱공은 사화로 돌아가셨으나 참판까지 지낸 어른이었고

퇴계가의 재산형성에도 크게 뒷받침이 되었었으니 유배에서 돌아와 영송촌에 우거했다 해도

재력은 처가에 의탁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탄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락정 정자 이름을 지어보낼 때 마을 이름을 영송이라했으니

수송대란 이름을 수승대로 바꾸기 이전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옛날 사대부 집안들의 혼맥은 사대부 집안들 끼리 이루어졌던게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 같네.

 

충의교위 정순공, 목사 정종아공, 삼괴당할아버지, 영승의 전씨 집안, 퇴계선생 집안,

갈천선생과 요수선생, 거기다가 남명선생까지 다 연결되고 있으니 말일세.

구하기 힘든 자료들을 많이 보내주는 자네 덕분에 돌고돌지 않고

곧바로 오백년전 세상 속에서 노니는 지적 호사를 누리고 있네. 고맙고 감사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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