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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제재소 풍경

제재소에서 나무를 켠다
창공을 향해 도약하며 꼿꼿하던 나무가 가지와 푸른 꿈을 죄다 잊고
사지를 잘린 채 남아있던 생명의 물기마저 토해내고
제재소 거대한 도마 위에 눕는다

공양의식은 소란한 축제다
마을 축제에 동원된 희생의 마지막 비명처럼
상하로 타원의 궤도에서 회전하는
띠톱이 맹열한 기세를 올리며
축제는 야단법석이다

고급 일식 셰프의 참치 해체쇼에 초대된 단골처럼 쩍쩍 입맛을 다시고
파고드는 톱날이 매끈히 속살을 가르지르며
긴 살점 한 겹이 툭 떨어진다

사람들의 입맛대로 얇거나 두텁게 썰리며 제 몸통이 한 겹 한 겹씩 줄어든다
살점들은 사람들의 욕망의 상에 오르는데
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거나
가구가 되어 사람들의 손때가 묻거나
찻상이 되어 그윽한 시선을 받겠지
창칼로 글을 새겨져 오래오래 기념이 되기도 하겠지

거무튀튀하고 울퉁불퉁한 피죽 안에
고이 품은 속살의 향기와 색깔!
나무는 죽어서도 공양을 한다
나무는 죽어서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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