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그림은 진양 정씨 문중의 자랑스러운 선조에 관련된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익산 문중의 정재현 종인께서 혜촌 화백의 붓을 빌어 재현한 그림인데
당시 문중일을 조력하던 내게 기증한 것이다.
진양정씨 중시조이신 諱 晉卿(진경)의 2세이신 諱 任德(임덕)의 두 아드님이
왜적의 침입으로 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서 곤경에 처하자
정 유와 정 손 두 형제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 아버지를 구하고
작은 아들은 적병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
知善州事를 지낸 鄭任德(정덕)은 鄭愈(정 유), 鄭손, 鄭懃 세 아드님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공민왕 21년(1372)에 하동군에서 밤중에 왜적이 쳐들어와 모두 도망쳤으나
아버지는 병환이 나서 말을 탈 수가 없었다. 두 아들이 부축하여 나오자 왜적이 추격해
큰 아들 정 유가 왜적 몇을 사살하자 적이 아버지를 향해 칼을 뽑아들고 돌진해 왔다.
아우인 정 손이 이를 몸으로 막고 4명을 처치하고 힘껏 싸워서 아버지를 구했다.
그러나 정 손은 결국 적병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만다. (고려사, 동국통감, 진양지의 기록)
진양정씨 문중은 백문, 중문, 계문으로 세 문중으로 나누는데
백문은 3세 정 유의 직계 후손이요,
중문은 3세 정 손의 직계 후손이요,
계문은 3세 정 근의 직계 후손이다.
우리 농산문중은 중문으로서 정 손 할아버지가 내게는 19대 조부이시다.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에 소재하고 있는 孝友祠는
중문의 선조인 정 손 선생을 배향한다.
선조께서는 생원으로 中顯大夫(중현대부) 宗簿寺丞(종부시승)에 증직되었고
旌閭(정려)를 하명받았다.
효도와 우애를 지키려 목숨을 잃은 선조의 큰 뜻을 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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