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의 창포리 언덕에는 원시의 바람, 야생의 바람이 분다.
문명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순치되지 않은 야생마들이
거친 콧김을 내뱉으며 무한 질주한다.
잠잠하던 바다를 흔들어 깨우던 거대한 힘이 쇄도한다.
수평선 너머에서 질주하던 본능이 해안의 단애(斷崖)를 깎아 세우더니
이 언덕을 요동치게 한다.
바람에 귀 기울이면 어떤 외침이 들린다.
내 근원을 묻지 마오.
이 격정을 탓하지 마오.
나는 사생아요, 부랑아라오.
봄바람에 들뜨는 춘흥(春興)과 춤바람이 몰고 오는 사춘의 격정,
안정된 일상을 파괴하는 일탈과 변신이 내 분신이라오.
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본능이요, 충동이요 기운이라오.
그러기에 어떤 것도 나를 붙들어 맬 수 없다는 것.
고요히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방랑자라오.
소속도 의무도 없는 자유의 화신이라오.
어디로 가는지 묻지를 마오.
건 듯 이는 미풍에서 격정의 폭풍은 순간의 충동에 이끌리니 종잡을 수 없다오.
고요와 안정의 유혹에 빠진 적 없는 보헤미안이라오.
규칙도 습관도 나를 붙들어 맬 수 없는 나는 코뿔소라오.
어릴 적, 종이 팔랑개비는 바람을 영접하는 부지런한 손길이었다.
바람에 손을 내밀어 저돌적인 힘을 받아 제 몸을 돌렸다.
팔랑개비는 바람을 먹고 사는, 바람의 힘에 고무되는 바람의 분신이다.
바람은 그 소매깃으로 빨려들어가며 팔을 휘저어 돌린다.
이 언덕은 팔랑개비의 꿈을 이룬 디즈니랜드다.
추억이 현실로 등장한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풍차들.
야생마들이 주체하지 못하는 힘으로, 일개미처럼 날개를 돌린다.
어느새 일어나는 돌개바람이여!
돌개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사방의 신들의 사활을 건 투쟁에서 이룬 화해의 결과라네.
서로 자신의 방향만을 고집했던 사방의 신들에게 해결의 묘안을 준 것은 태극의 지혜라네.
직선의 질주가 곡선으로 둥글게 도는 것이었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원만한 길은 궁극의 길, 완벽의 길이라네.
“돌아라 돌아라. 한 방향의 아둔한 고집에서 깨어나라.
어디도 치우침 없는 원이 해답이다.”
제 멋대로 산발적으로 사방으로 튀던 모래알 같은 바람이
풍차를 만나자 순풍에 돛을 단 듯 날개가 돌아간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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