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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천도 복숭아 한담 복숭아를 수확했다고 친구가 한 바구니를 주고 간다 장마 기간이라 뜨거운 햇빛이 부족해 단맛이 부족할 것이란 성급한 판단은 선물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다 아가의 볼처럼 발그레한 담홍색에 부드러운 감촉을 가진 복숭아를 먹거리로 여기고 단번에 칼질하는 동물적 욕망을 잠시 뒤로 미루고 천천히 살펴보며 문화예술적 상징으로 감상을 해 본다 옥황상제의 식탁에 오르는 하늘 복숭아의 의미를 가진 는 전설 속의 과일이다 장수를 기원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빚어낸 복숭아는 전설속의 과일로 예술의 소재가 되어왔다 천도를 훔치다 신의 벌을 받아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어 참회하는 손오공의 전설은 영생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한결같은 욕망이다 우리 고시조에 천도에 관한 시가 있다 벽해수 말근 후에 천년도 씨를 심거 그 남무 자라서 열.. 더보기
중심과 주변의 사유 장수나 왕과 같은 권력자들은 겹겹으로 둘러쌓인 호위의 중심에 위치한다 관공서의 행사장이나 직장인들의 회식에도 가장 중심 즉 가운데 자리가 제일 상석이며 내방자들의 상대적 변두리와자리매김을 하여 좌석을 배정한다 중심부와 거리가 먼 주변 즉 한직이나 지방, 같은 자리는 권력 서열이 낮은 사람들의 자리였다 중심부에 위치하고 싶은 욕망은 모든 인간들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계란의 노른자 , 원자의 핵 같은 도심의 부동산, 권력이 집중된 중앙 부처의 요직, 보호받고 주목받고 싶고 영향력을 증대하고 싶은 리비도적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일은 종의 유전자인 씨를 몸의 가장 중심부에 둔다 종의 파일을 내장한 극비 파일인 보물을 가장 안전하고 은밀한 곳에 배치하고 있다 사람의 생식기관도 태아가 배양되는 태반도 그렇다 리차드.. 더보기
리요타르에 공감하며 요 며칠동안에 장프랑수와 리요타르에 흠뻑 젖어든다 젖는다는 것은 그의 사상에 깊은 동조와 공감의 은유다 하잘 것 없지만 내가 원하고 지지하고 추구하는 사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근대의 역사와 철학은 통합서사 위주였다 헤겔로 대표되는 이성주의는 모든 것을 하나의 이론적 틀로 규명하려고 한다 이성에 기반하여 총체성을 지향하는 획일적인 가치 체계에 반기를 들고 비판하였다 전체에 귀속되지 않는 소수의 타자, 일반적이지 않은 별난 것들,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비주류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차이를 인정하여 이질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점에 이끌린다 다원주의는 이제 포스트모던의 기본 이념이다 리오타르는 소서사를 중시한다 사회 대다수들의 공통적인 담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집단이나 개별자들.. 더보기
황소 왕방울 눈 굼뜬 발걸음 순하디순한 소도 때론 싸움을 한다 제 앞을 막는 도전자에게 고분고분 투항하지 않는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곁눈질도 비겁한 뒷걸음도 치지 않는다 제 모든 자존을 걸고 뚝심으로 버티며 싸운다 부릅뜬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불굴의 투혼을 볼사르며 단단한 양뿔로 찌르고 부딪치며 육중한 몸으로 공방전을 벌인다 승부보다 중요한 건 자존감이다 존재하는 이유다 평생에 한 번은 저 소처럼 살아야 한다 운명적 도전 앞에서 소처럼 견디며 굴복하지 않고 강인해져야 한다 그런 사람이 떠오른다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더보기
물의 행열 물나들이 삼거리 다리 위에서 물구경을 한다 밤새 내린 비로 물이 많이 불어 하천 폭이 좁아지고 흐르는 물길의 기세가 강성하다 자연이 제공하는 이벤트이자 공연이다 다만 이 공연은 한시적이라 볼만한 구경은 하루 이틀 정도다 두 골짜기의 물이 만나는 지점이라 물나들이라고 한다 한 쪽은 주로 남덕유산 사면에서 월성을 거쳐 내려오는 물길이고 또 다른 한 쪽은 덕유산 삿갓재 골짜기에서 병곡으로 흘러온 물길이다 거산준령 넓은 품을 골고루 적시며 빗물들이 골짜기로 모이더니 행열이 시작된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캠페인도 현수막도 내걸지 않았지만 온 몸에 녹아든 진리의 네비게이션 물의 행열이 가는 걸음이 곧 진리요 길이다 물들도 서로 손을 잡고 가슴을 맞대니 신명을 낸다 춤을 추며 찬가를 부른다 우리는 하늘에서 파견된 메.. 더보기
옥수수 꽃술을 찾아온 벌떼 장마 중에도 아침 햇살은 찬란하여 사날 전에 핀 옥수수 꽃술을 눈부시게 비춘다 연일 내리는 단비로 가뭄의 갈증을 모두 잊고 신명난듯 키를 키우더니 마침내 꽃술을 피우며 생명의 절정에 이른다 꽃술에도 꿀이 있다니....... 내 둔감한 후각을 일깨워주듯이 벌들이 부지런히 화분과 꿀을 따고 있다 나는 한참동안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벌들은 제 일에 열중하느라 조심스런 관찰자를 성가시게 여기지 않는다 벌들은 자연에 대한 고도의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인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누적된 경험으로 진화해 온 곤충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자연의 생태적 환경의 관계와 질서를 체화하며 살아가는 벌이다 몇 년 전에는 벌이 없다며, 혹시 환경 문제를 우려하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뿌듯한 안도감이 생겨난.. 더보기
비비추에 경배하며 비비추가 깃대를 쭈욱 뽑아올리더니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이제 보니 나도 알겠구나 이삼일에 한 층씩 꽃을 게양한다 게양한다는 것은 널리 알리는 어떤 이념이지 우리 경축일에는 국기를 한 층 매다는데 비비추의 축일은 여러 날에 걸쳐서 여러 층으로 아름다움의 깃대, 왕국의 절대 이념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거는구나 놀라워라 발걸음을 멈추고 비비추 연두색 깃발을 향해 경배를 드린다 더보기
천국은 나그네의 것 남태평양에서 원주민과 함께 사는 어느 분의 말 한 귀절을 소중하게 포착한다 마이크로네시아의 석양 풍경를 보며 그는 "천국은 나그네들의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 늘 정주하는 토박이들은 그 풍경에 익숙해져서 새로움이라거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덤덤하지만 여행자들이나 나그네들은 색다른 체험으로써 절경이나 천국과 같은 풍경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사막의 오아시스도 마찬가지다 사막 여행을 하다가 극도로 지치고 목 마른 상태에서 얻어지는 환상의 그늘이고 샘이다 이 말은 노마드가 되어야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시간이나 삶의 터전이라는 공간은 동일함과 차이가 뒤섞여 있다 같은듯 하면서 다르고, 다른듯 하면서도 같은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어제와 조금 다른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