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가 원래는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차츰 신분의 상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왕관이나 사대부들의 관모, 제관의 모자 등은 위엄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모자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자는 계층과 신분을 구분하는 위계질서의 상징이며
왕관은 지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화려함의 극치였다.
다수의 피지배 계층에게 사모紗帽는 꿈 속의 보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관직에 나가야 관모를 쓸 수 있었으므로 모자는 출세의 상징인 셈이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생에 단 한 번 혼례에서만은
사모를 허용했으니 인간미가 드러난 사례라고 본다.
원래 망건이나 갓은 중국에서 건너 온 것이지만
우리가 더 널리 애용하였고 제조 기술도 뛰어났다고 한다.
인모나 말총으로 만들어 역으로 중국에 수출했다고 전해진다.
갓은 늘 머리에 쓰고 다녀도 불편하지 않게 견고하고 가벼운데다 독특한 구조로 위엄을 보인다.
모자의 구조를 살펴본다.
모자는 캡, 햇, 보닛, 후드로 크게 나눈다고.......
캡은 모자의 테가 없고 머리에 꼭 맞는 모자이며
햇은 모자의 머리(크라운)와 테와 챙(브림)이 있는 모자이며
보닛은 뒤에서부터 머리전체를 싸듯이 가리고 이마와 얼굴만 드러낸 모자이며
후드는 머리 전체를 덮어 싸는 부드러운 모자다.
모자를 전문으로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업계에서 이름 붙인 모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오늘날에는 모자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데 특수한 활동이나 직업, 신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모자는 패션의 일부로 자기 연출과 홍보의 도구로 애용된다.
간편한 착용으로 이미지를 변화 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소품이자 치장이다.
치렁치렁한 금붙이가 주렴 같은 왕관, 상투 위에 덮어 쓴 망건과 갓, 마술사의 크라운이 높은 모자,
사냥꾼의 헌팅캡, 장군이나 군인의 군모, 중고교생의 교모, 예술가의 베레모,
꽃 무늬 화려한 기생의 모자, 땀배인 농부의 밀짚 모자, 등은
모자 한 개만으로도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패션은 인간의 욕구를 외면적으로, 진실하게 반영하는 예술의 한 부분이자 삶의 한 부분이다.
오늘날에는 모자 패션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놀랍다.
영화나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쓴 모자 하나가 그 방면의 패션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자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새마을 운동 모자, 해병대의 팔각모 등은 단합의 상징이다.
까까 머리에 교표를 달고 군대식 경례를 붙이던 교모는 옛 추억의 상징이다.
모자광은 아니어도 나는 몇 종류의 모자를 즐겨 쓴다.
군용 얼룩무늬를 물들인 카우보이 모자는 가볍고 브림이 넓어 뙤약볕 아래나 산에 갈 때
벙거지나 헌팅캡은 나들이 할 때
머리에 꼭 맞는 테 없는 야구 모자인 캡은 밭일이나 목공 작업시
귀달이 모자인 트랩퍼는 한 겨울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때
스노클링을 할 때는 까만 수영모를 즐겨 쓴다.
선물을 받고도 쓴 적이 없는 모자 한 개가 있다.
아들이 선물한 빨강색의 페즈라는 원통형의 모자인데
일부 이슬람 신자들과 터키 사람들이 애용하는 모자란다.
이걸 쓰고 밖에 나가기가 좀 머쓱해서 장식용이 되고 말았다.
며느리가 일본 여행 후 선물한 검은 헌팅캡은 바람이 잘 통하고 가볍다.
헌팅캡을 쓴 멋쟁이 시아버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베트남 여행에서 안 버리고 가져온 삿갓처럼 생긴 모자인 <논라>는
부부가 밭일을 할 때 가끔 쓰며 지난 여행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 취향의 허접한 모자를 주욱 펼치는 넉살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비싸고 고급스러워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 일상을 함께 한 소중한 모자이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모자는 한 개도 내가 만든 것이 없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쓰다가 나에게 물려준 낡은 모자라면 얼마나 좋을꼬.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가족이 만든 유일한 모자를
내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대물림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못내 아쉽다.
올 봄에는 벚꽃이 만발할 때 중절모를 쓰고 멋을 내보고 싶다.
아직 못 써 본 모자인데 그 테에 색깔이 고운 새 깃 한 개를 꼽으면 좋겠다.
그 모자의 멋스러움을 뽐낼 여인이 곁에 있으면 금상첨화련만........
소박한 꿈이지만 어린이가 설빔을 기다리듯 꿈꾸는 일은 즐겁다.
(위 모자는 내가 즐겨 쓰는 사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