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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이거 얼마요?

봄철에는 고사리를 꺾는 일이 즐겁다.

그런데 고사리를 꺾어서 삶아 말리면 1/10로 줄어든다.

야생의 고사리 한 줌을 꺾기 위해서 치른 수고가 야속하기만 하다.

나도 꺾어보고서야 알았다. 내 능력으로는 며칠을 모아야 건고사리 1근을 만들 수 있다.

1근에 5만원이란다. 헛참!




 

 


자본주의는 묘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매우 단순하고 획일적인 생각을 한다.

고사리를 누가 어떻게 어디서 어떤 생각으로 꺾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하물며 고사리의 성질이며 맛이며 , 자라는 과정에 받은 햇볕이며 바람을 생각하겠는가?

1근에 5만원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5만원으로 다른 물건과 바꿀 있는 것이다..

물론 사려는 사람이 많고 팔려는 물건이 부족하면 조금 더 상승할 것이다.

모든 행위를 단순화 시키고 결과물로 평가할 뿐이다.

팔고 싶으면 팔고 사고 싶으면 사라는 것이다.



 

이웃에 초상이 나서 문상하며 부의금으로 5만원을 지출했다.

고사리 한 근을 팔아야 벌 수 있는 5만원이다. 고사리의 교환 가치인 것이다.

누구는 집 한 채를 샀다가 몇 달 만에 팔았는데 500만원을 순이익으로 벌었다고 한다.

고사리를 석 달 열흘 동안 꺾어서 말려 파는 돈이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고사리를 팔지 않기로 한다. 상품화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손에 고사리를 맡기고 싶지 않다. 사고 파는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가치와 시장에서 부여하는 가치와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다.

내가 산을 다니며 쏟은 수고와 누린 기쁨은 오로지 나만의 소중한 체험인데 돈 몇 푼으로 환산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대신에 고사리를 잘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손님들 식탁에 오르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선친 기일에 제수로 쓸 것이다.




어린 시절에 외조부님 제사 때에 어머니가 나를 보내시면서 쌀을 몇 되 박 가져가도록 했다.

그 때는 이웃의 잔치나 초상에 돈이 아닌 농산물을 부조하기도 했다.

나는 그 때가 오히려 그립다. 자본주의 이전의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가 그리운 것이다.

 

얼마 전에 동생이 시골집을 한 채 샀는데 이웃들이 하나같이 묻는다.

얼마 주었어요?”물을 때마다

잘 모른다며 둘러대고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터를 돈으로 환산하는 게 싫어서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보고 교환 가치로 평가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어떤 집이든 고유한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지은 사람의 독특한 정성과 역사와 추억이 담겨 있는데

깡그리 무시하는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함을 힐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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