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할 때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상투적인 화법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까닭이 궁금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에는 조상들의 생각과 정서가 어우러져서 만들어낸 전통 문화의 진실이 담겨 있다.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이라 예전에는 범에 물려 죽는 사건도 많았다.
중국인들의 우스갯 소리에
“조선인들은 절반은 호랑이에게 물려가지 않으려고 애쓰고 절반은 호랑한테 죽은 사람들을 조문한다.”는 말이 있단다.
육당 선생도 우리나라를 호랑이 이야기가 많은 나라(虎談國)라고 했단다.
여기 그림 한 점을 감상해 보자.
호랑이 한 마리가 근엄하게 누워서 두 마리의 토끼의 담뱃불 시중을 받고 있다.
그림을 깊이 음미해 보면 맛과 멋의 이치가 절묘하다.
긴 담뱃대는 권력, 위엄, 권위, 지배의 상징이다.
토끼는 나약함, 평화, 조력자의 상징인 셈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사나운 호랑이와 가장 연약해 보이는 토끼가
상생과 협력, 공존의 평화를 유지하는 유토피아의 표현이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건이 대반전을 일으키는 장면이다.
강약의 조화, 야행성 범과 낮에 주행성 토끼의 협력 관계로
그림을 바라보는 누구나 미소가 돌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왜 호랑이가 하필 담배를 피울까?
담뱃대는 불씨를 담는 화로 역할이 있다.
예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소중한 불씨를 간직하기 위해 화롯불을 꺼트리지 않아야했다.
그런 역할은 집안의 조부모들이 감당했으니 불씨를 유지하는 호랑이는
집안에 이로움을 주는 친근한 동물인 셈이다.
그리고 불은 문명사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다.
어둠을 밝히고 화식을 가능하게 하고 그릇을 굽고 쇠를 달구었다.
그런 불을 피우는 호랑이는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
음양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밤의 동물이 불을 물고 있다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뜻하는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다가 털이 불이 붙어서 검은 반점이 있다는 민담도 유머러스하다.
불은 가장 대표적인 양이 상징이다.
호랑이가 불을 매우 무서워하는 사실을 뒤엎는다.
사람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다.
이 엄청난 반전 앞에서 누구나 미소를 머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