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니 약간의 취기가 돈다.
차례를 통해 죽은 조상들과 살아있는 후손들이 만난다.
조상들에게 올린 제주를 내가 마심으로써
생사의 강을 건너 뛰어 혈연적 유대를 확인하고 다진다.
술의 기원은 아득한 고대부터 시작된 제사에 있다.
인간의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건함으로
신과 조상께 제사 지내는 제주였던 것이다.
왜 술이 제주가 되었던 것일까?
술은 그 제조 과정에 우주적 신비가 내재되어 있다.
한 물질이 다른 물질을 만나서 이전이 속성과는 전혀 다른
제 3의 물질이 된다는 점이다.
보리와 밀, 쌀 등의 곡류가 누룩을 만나서 적정한 조건을 유지하면
발효가 되어 술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낸다.
한 물질이 자기이 속성을 버리고 다른 물질도 자기의 속성을 버리고
오묘한 혼합, 화합이 이루어질 때 맛과 멋을 지닌 술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들이 생성되고 해체되는 오묘한 과정이
술을 만드는 과정 안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은 우주적 이치를 담고 있는
신성한 술이 되어 성스러운 제사에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술에 담긴 맛과 멋은 삶의 위로가 되고 풍류가 된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며 취한다는 점이다.
술은 이성이나 제도 등의 틀에 박힌 구속과 엄격함에서 우리를 해방 시킨다.
거기에는 일탈에 대한 충동과 반전의 묘미가 들끓는다.
아득한 옛날부터 공동체의 모임에는 필히 술이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술을 마심으로써 차분하던 마음에 들뜨고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
타인과의 분리의 장벽을 허물고 집단과 함께 즐기는 흥분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술은 찌들리고 억압된 현실에서 탈피하는 마취제 역할을 하여
마치 날개를 단 새처럼 훨훨 이상을 향해 날아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술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맛과 멋의 척도였다.
술에 취하면 소심함과 부끄러움을 잊고 흥에 겨워 춤추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음주가무를 즐긴 우리 민족이 아니었던가!
모이기만 하면 술 마시고 가무를 즐겼다고 고서에 많은 기록들이 있다.
술에 취함으로써 개성에 갇힌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자기의 개체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고인돌의 젯터에서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공동체의 결속과 번영을 다짐하며 신명나게 놀았던 것이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모든 이들이 음복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개성이나 이익, 그리고 자기만의 주장에 함몰되면 남들과 하나가 되기 어렵다.
소아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아를 향해야 한다.
술을 통해서 편협한 소아에서 벗어나 타자와 어울리고 함께 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술은 신선주라고도 해도 좋으리라.
'사랑방 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영화에서 - 왜 인조는 삼배를 했을까? (0) | 2017.10.13 |
---|---|
술에 담긴 음양 (0) | 2017.10.06 |
추석 (0) | 2017.10.02 |
용문사 은행나무와 피뢰침 첨탑 (0) | 2017.09.30 |
송이버섯의 행운 (0) | 2017.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