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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담화

목표하지 않기에 음미하는 길


어떤 전시회갔을 때 친구는 나를 소개하며 (별 것도 아닌) 00학교 동창회장이라며 내 사회적 관모를 씌워 웃었다

사람들은 퇴직 후 「전교장」이니 「전00장」등의 호칭을 곧잘 사용한다

물론 예우를 위한 것이지만 밑바탕에는 이전의 지위에 대한 소유욕이자 은근한 과시욕이 깔려있다

현재의 실존보다는 과거의 삶의 한 단면이자 포장에 불과한 지위를 신분의 악세사리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하여 목적지로부터 자유롭다

목표하지 않는다

목표하지 않기에 보다 많은 길들을

에둘러 음미한다

 

(양재천 자전거길의 일부, 유하)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여 사범대학을 나왔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정년 퇴직보다 9년을 앞당겨 퇴직했다

승진을 목표로 하지 않은 것을 후회 한 적이 없다

삶의 외관이나 형식보다 내실과 컨텐츠를 중시했었다

승진을 목표로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고 여겼다

그럼으로써 인생의 여러길을 에둘러 음미하게 되었다

삶의 지평을 넓히고 다양한 채널을 가지고 싶었다

전원생활이나 목공예를 배우고 헬스운동이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연유인 것이다

 

왕위와 사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당한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한 미망인과의 사랑을 택했고 세계인들로 부터 받았던 찬사는 내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책은 내 삶의 혁명서인 셈이다


 

어떤 전직 교원 한 분은 제자들의 이름을 거의 외웠다고 자신 만만해 하며

기억나는 제자를 묻자 가장 출세한 제자의 이름을 술술 불어댔다

내 교직 경험은 이에 비하면 하잘 것 없고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다

 

나는 제자들을 많이 기억하지도 못하고 크게 성공한 제자들이 있는지도 관심이 별로 없다

조금 기억이 나는 제자는 우수한 제자보다 어렵거나 개성이 강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꽤나 성공한 녀석들은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많은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으니

내 몫은 그 반대편의 제자들로 족하다

생활 환경이 어렵거나 문제를 많이 가진 제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신념과 사랑으로 이끌지 못한 후회가 앞선다

그리고 제자들의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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