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있다
충혈된 눈알을 부라리며 핏대를 세우며
패거리들이 결집하며 대로를 점령한다
왕도마뱀처럼
왕도마뱀처럼
불끈 쥔 주먹, 피켓을 든 팔을 위로 앞으로 내뻗으며
목청을 돋운 구호에 날카로운 쇠소리가 섞이고
헐떡거리는 숨에 악에 받힌 거품을 물고 있다
투견처럼
투견처럼
일면식도 없던 모래알 낱개들이 시멘트 가루 같은 이념의 접착제를 덮어쓰자
서로의 거리를 좁히며 구호의 가락을 맞추며 한 패가 된다
언제 그랬냐는듯이 서로의 차이를 진영의 보자기로 덮고
하나의 색깔로 페인트를 분사한다
세상은 오로지 둘로만 나누어진다
멀쩡한 하늘을 가리키며 구름도 우리 편이라며 구름잡는 소릴하며
선동과 비난, 음모와 패악질이 반복된다
거대한 두개의 진영이 차려지고
가족도 이웃도 학교도 종교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며 당근의 유혹과 채찍을 휘두른다
진영은 마침내 군영이 되고 군영의 스피커들은 적에게는
독설로 우군에게는 사탕발림의 감언을 쏟아붓는다
좋고 나쁜 것이며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우리 편에 유익한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이성적 판단 따위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콧방귀를 뀐다
존경받던 지도자도, 지식인도, 종교인도, 작가도 이 진영에 편입되는 순간
진영의 좀비가 되어 버리는 기묘한 현상이 속출한다
진영의 목소리가 큰 장수들이 황산벌의 계백처럼 분연히 외친다
우리만이 선이요 정의니 우리들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하오
시계추를 우리 쪽으로 끌고와서 밀어 올려야 하오
저 쪽으로 끌어가려는 사악한 적들의 음모와 도발을 쳐부수어야 하오
우리들의 세상!
우리들의 세상!
어쩌려는 것인가?
한 쪽 위로 팽팽하게 밀어올린 시계추를, 그네를 언제까지 떠받치겠는가!
올리간만큼 반대쪽으로 흔들린다는 자명한 순리와 역사 인식을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가!
격렬하게 출렁거리는 그네에 탄 저 불안한 눈망울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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