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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토란 줄기는 마르고

토란 줄기가 볕에 꼬들꼬들 마르는 것을 보며 풍성하고 낭만적인 감성에 젖는다
장마가 끝나고 늦은 여름의 따가운 볕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파라솔처럼 진한 녹색의 잎을 펼치며 촉촉한 땅에서 하루가 다르게 키를 키우고 새 줄기에 작은 잎을 피워내던 너는 내 벗이고 살아있는 예술품이지
물을 좋아하는 너를 향한 내 사랑으로 양팔 근육이 팽팽해지는 물통을 들고 매일 매일 네 잎사이로 흥건히 뿌려주었지
이제 온 몸이 파삭파삭해질 때까지 물기를 말리며 내 먹거리가 되어주려 하는구나

나는 내가 구성하는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세계-내-존재)
토란 밭은 내가 만들어가는 자연으로서의 세계이며 노동을 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보람과 기쁨을 맛보며 현상학적인 세계를 구성하기도 한다 요즘 후설의 현상학에 조금씩 눈이 뜨여지니 내 삶은 더욱 활기차고 내면이 다듬어지고 깊어가는 느낌이다

농부가 일상적으로 노동을 하고 수확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적인 태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상적인 생활태도에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현상학적인 태도 다른 말로 초월적인 태도, 선험적 태도,철학적 태도는 삶의 현신적 변화이며 삶의 의미를 고양 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일상적인 삶에 너무 치우쳐 매몰되어 있기 쉽상이다 농부는 가장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영농에 관한 온갖 정보를 수집하여 계획을 세우고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자연적인 생활태도를 당연시한다
삶의 한 부분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며 효용을 극대화하려 한다

의식의 지향이 오로지 외부의 대상에 한정된다 주택, 맛집, 취업, 결혼, 입시, 연봉과 같은 현실적인 것이 삶의 모두인 것처럼 되어버린다

이런 자연적인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 삶 전체를 바라보며 외부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성찰로 초월하는 태도인 현상학적인 태도를 자향하라고 후설은 강조한다
그러나 그 길은 참으로 어렵고 험난하다 마치 온갖 망상에서 해방되어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적 수행에 비견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구원을 얻는 것과 맥이 상통한다

자연적인 태도와의 결별은 우선적으로 거리를 투고 회의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초연한 관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관조가 필요하다
자식을 기르고 재테크를 하고 승진을 하고 특정 정파에 속하는 일 등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믿음을 보류하라고 후설은 말한다

자연적 태도에서 현상학적인 태도로 이행하는 일은 삶의 지상과제다
내가 머물던 좁은 곳을 벗어나 높은 산에서 올라서 보는 시선의 높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개입하고 몰두하던 것들, 내 당연한 일상의 개별적인 것들보다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단호해야 한다 지금까지 믿었던 구태에서 환골탈태하는 자기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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