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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비 줄줄 내리고

우산을 받쳐주다가 발생한 논란을 보며 빙그레 웃는 중에 불현듯 시 한 편이 연상된다
위선환 시인의 「우중」이란 시다
그 분의 다감한 눈길과 정다운 육성이 생생하다
시 전문을 옮겨본다

비 줄줄 내리고

나는 어깨를 기울여서 키 낮은 동행에게 가려주고, 동행의 반쪽이 비에서 가려지고

비 가려주려 기울인 어깨와 아래쪽은 비 젖지 않는다고 정의하고, 나의 기운 어깨와 아래로 반쪽은 비 젖지 않고

비 가려진 동행의 반쪽과 비 젖지 않는 나의 반쪽이 다붙어서 비 내려도 비 젖지 않는 한쪽이 되고

나와 동행의 합해서 한쪽이 못 된 반쪽씩은 서로 떨어져 있으므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 먼 반쪽씩이 각각 비 젖고 있으므로

나는 팔을 둘러 척척하게 젖은 동행의 저어쪽 어깨를, 동행은 팔을 둘러 빗물 흘러서 도랑 파이는 내 이쪽 옆구리를 서로 싸안고

걸어가는 중이고, 비 줄줄 내리고


두 사람이 동행을 하는데 비가 줄줄 내린다 둘은 하나의 우산을 써고 걸아가므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산을 상대쪽으로 기울여 주며 서로를 밀착하며 한 몸이 되려한다
나란히 서 있으므로 어깨를 맞댄 한 쪽의 오른 어깨와 상대의 왼 어깨는 비에 젖지 않지만 서로의 바깥쪽 어깨는 비에 젖는다
그래서 팔을 둘러 비맞는 어깨를 감싸며 함께 젖는다

시인은 하나의 우산으로 동행하는 상황을 설정하는데 이는 사랑의 현실적 한계를 비유한다
어느 사랑이 모든 것을 충족하며 달콤하기만 하랴 사랑은 기쁨, 충만, 황홀, 즐거움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아프고 쓰리고 허전한 괴로움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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