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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뻐꾸기의 전언

뻐꾸기가  이 골짜기에서 울고, 웃고, 노래하고, 외치는 아침이다
울음소리로만 알았는데 좀 더 이런저런 연유나 사정을 듣고 친해지다 보니  여러 의미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내가 해독할 수 있는 음성은 고작 몇  개 밖에 되지 못하니 여전히 호기심과 의문으로 대한다
뻐꾸기의 우렁차고 아름다우며 특이한 소리에 배어나오는 의미를 상상해 본다

우리의 영토는 동료의 소리가 들리는 범위까지란다
영토를 이탈하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란다
우리는 기나긴 여행을 하며 생을 보내는 운명을 지니고 있단다 우리를 낳고 기른 부모와 그들의 부모와 또 그들의 부모들처럼.......
공중에도 길이 있단다 그 길은 우리 종족들을 존재하게 하는 하늘의 뜻이지 그 뜻을 따라 헤아릴 수도 없는 세월을 거치면서 선조들이 개척한 우리 뻐꾸기의 길이 있단다
우리의 몸과 기억에 각인된 경로를 따라 셀 수 없는 산봉우리를 굽어보며 모래바람 흩날리는 사막과 끝없는 대양을 건너며 서너 달만에 도착한 이 산골이란다

오목눈이 대리모의 뻐꾸기 양육

우리는 떠돌이 새라서 더러 텃새들과 갈등하고 분쟁이 생기는 수가 있단다
가장 흔한 사례가 탁란을 하는 것인데 오목눈이나 곤줄박이 같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고 대리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도리를 어기는 새라고 힐난하지만 우리의 처지를 잘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지
자연의 이치와 도리를 따르는 것이 궁극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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