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팬 널따랗고 잘 생긴 바위가 아니어도
그 궁둥이나 사타구니에 흙 몇 줌만 있어도
한 생애 정착하는 기린초와 바위는
박복한 운명 기구한 만남이다.
한여름 타는 열기에 서로의 체온을 미안해하고
잎 넓은 잡목 그늘을 얼마나 소망했을까?
이슬 한 방울도 감로수처럼 모세 혈관을 적시는데
단비가 바위 저편으로 흐를 때 안타까움 오죽했을까?
박토로 허기진 배 움켜쥐고 한 발짝 건너
옥토를 보며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그 잎새 그 줄기 마디마디엔
구곡간장 녹이는 그런 사연 있었던 거야.
바위는 뿌리의 걸림돌 되지 않으려
온 몸으로 뿌리를 감싸 안는다.
기린초는 모진 생명 품어준 바위에게
고통으로 꽃을 피워 화답한다.
궁합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검버섯 듬성한 이끼 내린 바위에
샛노란 은하수 흐르는 기린초 안기면
차라리 원앙 한 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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