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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의 글방

마르고 비우고 버리는 계절의 사색 1

 

뜰에는 낙엽들의 마지막 의례로 부산하다.


마르거나 텅 비며 초췌(憔悴)한 낙엽들이

차츰 쇠잔해지는 태양의 온기를 가늠하며

모체에 매달려 움켜쥐던 손아귀는 집착이라며

기꺼이 서로의 손목을 놓는다.


 


 



 


 인연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자유인가?


온갖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 누리는 悅樂인가?

불어라. 자비의 바람이여.

네 등을 타고 오르며 천상의 바다로 유영(遊泳)하리라.


 


 



 


 


잠순간의 천상의 비행을 끝낸 낙엽들이


지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바람에 우루루 몰려다닌다.


마른 몸을 뒤척이며 서로의 몸을 비비며, 기대며


온 몸으로  바치는 마지막 율동으로 찬가를 부른다.


 


 


 


 


 


낙엽들이 온 몸을 내던진다.


구르며, 뛰며, 엎어지며 모난 부분을 떼어내고


아직 남은 俗緣을 벗어나려 이러 저리 몸을 뒤척이며


제 존재의 本鄕으로 돌아가려 한다.


     


 



 


 


귀가 긴 밤나무 잎은 제 귀를 땅에 묻고


덧없는 지난 여름의 풍성함을 비워낸다.


목련 둥근 잎사귀는 군데군데 검버섯 반점이 피어나며


화려한 색의 미망을 씻어낸다.


 


 



 


 


노숙자들이 제 과거에 戀戀하지 않는 것처럼


한데 엉켜있는 낙엽들은 이제 제 인연을 반추하지 않는다.


뜬 구름처럼 사라지고 마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직 더 가벼워지며 제 색깔을 부지런히 지우며, 제 향기를 묻는다. 


 


 



 


 


바람이 낙엽들을 몰고 다닌다.


덜 마른 잎들에게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른 잎들에게는  더 잘게작게 부서지도록


이리저리 쓸고 다닌다.


 


 


바람아 불어라.


이 몸이 부서지게


이 몸이 닳고 닳아져


온전한 空으로 회귀하게.....


 


 



 


 


風磬풍경이 운다.


寂滅적멸로 가는 낙엽이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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